네오위버멘쉬를 위하여(마치며 3)
그러한 전제조건이라 함이, 우리의 문명과 문화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의지로부터 싹튼다. 이러한 시도는 그동안 나를 구속시켰던 문화와 문명의 틀에서 자연으로의 복귀를 예고한다. 나에게 속임과 속임수를 남발하지 않는 환경으로의 ‘귀향’이다.
배트맨의 집사, 알프레드의 인생을 바꾼 사건
” 라며 포기하지 말고 기둥을 밀어내 탈출하라고 외치는 장면에서는 냉철한 현실감과 단단한 믿음이 드러난다 . 이 알프레드의 모습이 단순한 영화 속 설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
네오위버멘쉬를 위하여(48)
다만 자기기만 ( 欺瞞 ) 에서 탈출하려는 힘이 필요하다 . 이러한 의식만이 나의 살아감의 밑거름으로 작용된다 . 말하거니와 자기를 속인다는 의미는 살아감에 대한 책임의 부재 ( 不在 ) 이다 . 거창한 목표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좋다 .
[문박사의 생활의 발견] 결심과 다짐 그리고 각오
실제 교육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교권은 무너진 지 오래이고 , 학생인권을 우선시하는 현 교육풍토에 어려움이 많을 것이며 , 거기다가 설상가상 ( 雪上加霜 ) 으로 박봉은 그들의 의욕상실로 이어져 탈출을 고민하게 되는 것으로 예상이 된다 .
네오위버멘쉬를 위하여(38)
이제는 인간이 창조한 가치라는 조건에서 탈출하라 ! 또 다른 가치기준은 무엇으로 말할 수 있을까 ? 과연 새로운 가치는 어디로부터 찾아야 하는가 ? 인간이 만들어 놓은 가치기준을 신과 같은 존재로 받아들이는 삶의 조건인가 ? 어둡고 어두운 시선은 우리들을 맹인으로 변화시켰다 .
네오위버멘쉬를 위하여(37)
이와 더불어 대중으로부터 탈출을 감행한다 .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일은 나의 의식적 벗어남이다 . 이로써 대중 속 고독한 사상이 만들어진다 . 이렇게 인간이 현실을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생동감 있는가 ? 우리는 두려움에서 해방되기 위해 대중을 만들어 왔다 .
네오위버멘쉬를 위하여(36)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의 대결 내지는 탈출의 의지는 나를 밖으로 유도한다 . 거기서 얻은 마음은 홀로 건강하게 지내는 고독이다 . 나는 고독의 정글에서 두려워하지 않는다 . 그 정글의 무한함이 선사하는 고독은 나로 태어나는 기로 ( 岐路 ) 이다 .
네오위버멘쉬를 위하여(29)
스스로를 조작적 인간 질서 속에서 탈출시켜야 한다 . 그래야 나를 알고 자신이 된다 . 이러한 의식적 벗어남의 발아 ( 發芽 ) 는 가장 깊숙한 성찰에서 나온다 . 아직도 모르겠는가 ? 지금 이 순간도 무리 본능이 우리를 얼마나 약화시키는지 .
네오위버멘쉬를 위하여(23)
이 순간 소용돌이에서 탈출하려는 시도는 뭔가 ? 결핍의 반항이다 . 조금 더 큰 원을 그리기 위한 발버둥이다 . 결핍은 무엇인가 ? 우리에게 결핍이 주는 냉정함은 열정을 수반해야 끓어오른다 . 관념에 머무르는 작은 원에서 탈출은 ‘ 철학하기 ’ 이다 .
네오위버멘쉬를 위하여(20)
더불어 우리의 반항은 시간 감옥으로부터 과감한 이성적 · 본능적 탈출로 표현된다 . < 다음 주에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