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칼럼

네오위버멘쉬를 위하여(48)

조석중 기자
조석중 경영학 박사
조석중 경영학 박사

그 시대의 적합한 인간 유형을 우리는 어떻게 탄생시키는가? 자연의 모든 만물은 있는 그대로다. 아울러 인간의 본질도 자연적이다. 그 본질을 바탕으로 지금의 실존도 자연적이다. 이 시대의 거대 담론에서 자유로운 유목민이 되고자 하는 반항이다. 즉 이 시대를 질문하고 주체적 각성을 갖추는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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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장한다. 자기 생존을 위해 할 수 있는 최고의 방어는 자신의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자기 힘의 권력을 키우는 방법 외엔 그 무엇도 아니다. 그 힘을 유지하고자 하는 의지는 자기가 품는 의문에 대한 답변과 일치한다. 나에게 대단한 성취가 꼭 필요한 부분도 아니다. 다만 자기기만(欺瞞)에서 탈출하려는 힘이 필요하다. 이러한 의식만이 나의 살아감의 밑거름으로 작용된다. 말하거니와 자기를 속인다는 의미는 살아감에 대한 책임의 부재(不在)이다. 거창한 목표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좋다. 살아감의 책임은 작은 실천을 속이지 않음으로써 나타나리라. 이러한 실천은 스스로 강해지는 밑거름을 마련한다. 더불어 죽음을 향한 소박한 진실은 나를 향한다. 그것이 살아감의 책임 완성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죽음은 태어남과 동시에 시작된다. 나를 유일하게 인식하는 인간 실존이다. 죽음이라는 명제 앞에 망각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죽음을 시시각각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영원성을 희망하는 어리석은 창조력을 개발했다. 그게 바로 헤아리기도 버거운 신들의 세상이었다. 신이 우리를 만들었는지, 아니면 우리가 신을 창조 했는지는 잠시만 생각해도 명백하다. 그 이유는 당장 신을 호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는 인간뿐이라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신을 호명하여 인간에게 경고했던 모든 행위의 주체는 인간이었다. 반면 신이라는 존재가 우리를 호출하여 심판을 하였던 적이 있는가? 단지 인간 스스로 정의하고 만들어 놓은 텍스트로 변환되었을 뿐이다. 그 증거로 인간은 상상하는 동물이라는 것이 정확한 근거다. 그래서 우리가 유일하게 알 수 있는 명백한 사실이 여기 있다. 나는 사람에게서 태어났다는 자연스러움이다. 사람의 아들과 딸로서, 이 세계를 여행하는 방랑자라는 사실이다.

우주의 모든 현상과 그에 따른 생성 소멸은 그냥 그러한 현상에 불과하다. 우리가 자연으로의 회귀를 바라는 마음과 같을 것이다. 우연과 필연을 말하지 않는 곳. 불완전함이 영원히 반복되는 이 세계. 따라서 이 거대한 우주 속에 인간의 완벽함이 존재하겠는가? 지구를 포함한 이 모든 것과 현상은 “그냥 그렇다”이다. 따져보면 우리가 말하는 완벽함도 인간이 만들어 놓은 욕망의 일부 아니겠는가! 이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명백하게 말하기 곤란하지만 외쳐볼 수 있는 지점이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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