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칼럼

네오위버멘쉬를 위하여(마치며 2)

조석중 기자
조석중 경영학 박사
조석중 경영학 박사

우리가 살면서 한 번쯤 살펴야 할 일이 있다. 지금 살아가는 이유를 질문하는 자세다. 이로써 무의식적 따라감으로부터 의식적 벗어남을 고찰(考察) 해야 한다. 우리는 현시대의 거대 담론에 억눌러 자기 관찰의 의지가 약화되었다. 아울러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이와 더불어 다가옴에 대한 위기감도 약화되는 분위기다. 이 같은 현상은 시대가 낳은 정신적 소홀함의 결과이다. 그로부터 우리는 정신적·육체적 안정감에 익숙해졌다. 그에 더해 우리는 그러한 안정감을 애써 갈망하지 않는가? 게다가 지나간 우리의 사고력은 엄격한 학습에 의해 길들여져 있다. 이로 인해 우리의 생각하기의 수고로움은 게으름을 피우는 중이다. 따라서 자기 정체성이 대중 속 일반적 담론에 매몰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실제로 우리는 집단이나 대중(大衆)의 여론에 휩쓸러 살고 있지 않는가? 예를 들면, 각종 미디어나 수많은 여론 형성에 따른 단순한 정신적 소비형태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세속적(世俗的) 기준―부의 축적, 명예 등―을 신봉하면서 말이다. 그에 대한 저항본능은 약화된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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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각자의 자연스러운 본능이 거세되어 무리 속에 일부로 기생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실 속 자기 내면과 씨름하고 있다. 이어서 자기 변화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을 안고 산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대중 속―세속적 분위기―안락함으로부터 소외될까 봐, 전전긍긍(戰戰兢兢) 하기도 한다. 여기에 있는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자기 사랑이 약화되어 자기의 욕망을 거세시키지는 않는가? 또 자기표현의 평가를 두려워하는 버릇이 생겼다. 거칠게 표현하면 나 자신이 현실을 살면서 무의식적 따라감의 이득을 보자는 심사(心思)이다. 따져보면 무의식적 따라감이 의식적 벗어남보다 이득이 높다는 결론이다. 이렇게 모든 살아감의 과정으로부터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스스로의 한계를 서둘러 단정 짓는 결과로부터 나온다. 이는 타인으로부터 사랑받기 위한―덕을 보려는―전략적 행동으로 이어진다. 더 나아가 이성적 사고의 우월함을 신봉한다. 그러면서 본능적 광기를 스스로 자제한다. 이윽고 자기 안에 도사리는 저항본능을‘나쁨’이라고 간주해 버린다. 결국 행복이라는 기준을‘자기 평화’로 설정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환경의 무의식적 따라감에 대한 고찰에 동의한다면 우리가 이대로 살아야 되는지 되물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부터 우리는 스스로 성찰(省察)하기를 시도해야 한다. 이는 다가옴에 대한 ‘기대와 염려’를 기반으로 가능성을 열어놓는 작업이다. 이러한 가능성은 나 자신을 알고자 하는 열망으로 표현된다. 열망하는 의지의 발휘는 자신을 넘어서는 행위다. 그리고 스스로 주인이 되겠다는 자신을 향한 다짐이다. 욕심을 부리자면 우리의 시선을‘채워지지 않는 자기 불만(不滿)’으로 옮겨야 한다. 채워지지 않는 불만은 자기로 향한 불만이다. 말하자면 ‘나는 나로 살고 있는 걸까?’를 질문해 보는 자세이다. 이로써 나에게 채찍을 가하는 용기를 발휘할 수 있다. 그러한 용기는 소중한 나의 살아감에 대한 책임지는 의지의 발동이다. 이어서 다가옴에 대한 기대와 올바름의 추진으로 이어진다. 이와 더불어 자기 자신의 서사를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가를 질문하게 될 것이다. 어느 순간, 우리에게 살아감에 대한 의구심이 들 때가 다가온다. 그때 맹목적 따라감을 의심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나를 잃어버린 삶이 주는 허무함으로부터 나 자신을 데려와야 한다. 이러한 인식아래 살아감을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한다. 비로소 자신을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를 발견할 때다. 이렇게 나는‘이대로 살아도 되는가?’에 대해, 나 자신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스스로 의식적 벗어남의 시도를 감행할 것이다.

역설적으로 우리는 대중 속에서 소외되는 맛을 가끔 보게 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앞서 언급했듯, 각종 미디어나 여론으로부터 반동적 시각으로 해석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또 유일한 자기 사상을 만들어 표현해야 한다. 이는 다가옴에 대한 긍정적 도전과 함께할 것이다. 이러한 상상력의 발휘는 나의 서사적 이야기를 남기겠다는 결의다. 즉 욕망을 일깨우고 고독―홀로 건강하게 잘 지내는―을 두려워하지 않을 용기를 갖자는 의미다. 인간은 자연을 그리워하는 본능이 있다. 자연으로부터 홀로 느껴보는 성취감은 독립적 사고에 따른다. 더불어 스스로를 되돌아오게 한다. 그러한 독립된 의지와 사유는 의식적 벗어남의 정점(頂點)으로 이를 것이다. 여기에 최선의 길을 꿈꾸는 것은 의심할 수 있는 반항정신이다. 또한 나의 과오(過誤)를 알아채는 능력도 포함된다. 이로부터 의식적 벗어남의 실체는‘나의 고유한 삶의 정당성’으로 말할 수 있다. 또한 살아감 자체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천하는 자세다. 이러한 의식적 벗어남을 시도할 때, 개별적 삶의 방향은 서서히 좋음과 올바름으로 향한다. 더 나아가 살아감에서 일어나는 부조리에 대한 견디는 자세도 빛을 보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 정치·사회 문제는 철학적 문제와 같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각성(覺醒)하는 철학적 지혜가 정치·사회 부조리를 당장 올바름으로 이끌지 않는다. 철학은 그 시대를 진단하고 아파하는 사람들의 영향력으로―아주 천천히―좀 더 나은 인간 삶으로 밝혀질 뿐이다. 즉 철학의 지혜는 서서히 대중 속에 녹아내리게 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그 중심으로부터 당신은 살아감의 질문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알아야 할 건, 개인 및 사회적 부조리가 순탄하게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런 삶의 조건에서 살아감의 책임은 나에게 달려든다. 따라서 부조리의 해결 가능성을 열어놓는 길을 나 스스로가 만들어야 한다. “언젠가 당신의 살아감 속으로부터 의식적 벗어남을 추구하려는 번개가 찾아오리라.”그때 당신은 각종 부조리의 해결 방안을 올바르게 전개할 것이다. 당신은 위대하고 소중한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당신의 살아감은 다가옴에 대한 ‘책임 있는 삶의 자세’로 표현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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