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감의 중간중간 예기치 않는 변수는―우울증을 동반한 삶의 변화 등―많다. 그중 가장 비중이 높다 할 부분이 기분에 따른 우울이라 하겠다. 그 이유는 우리는 현재와 미래를 불안과 염려하는 방식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아울러 충족되지 않는 욕망으로 끊임없이 생각을 이어나가며 고달픈 인생을 살고 있다. 게다가 이러한 살아감에서 일어나는 고통은 피할 수 없다.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면 우리 앞에 놓인 삶의 방해꾼을 불러오기다. 예를 들면, 나의 죽음, 미래의 불안 등을 불러오는 거다. 이러한 문제는 실체적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거부할 수 없는 우리들의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소화불량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선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따라서 살면서 마주하는 이러한 염려에 대한 결단을 내리고 살아야 한다. 그 이유는 유쾌한 삶을 위한 전제조건의 충족을 마련하는 일이다. 즉 나의 기분을 위한 마음속 정리를 하자는 뜻이다.
말하자면 나의 실천적 과제로 미리 가본 죽음에 대한 받아들임이다. 그에 따른 없음의 통찰을 깨달은 바이다. 미리 가본 죽음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우리들이다.
이와 적극적으로 대면하고 이를 유쾌한 받아들임으로 설정하고 사는 일이라 생각한다. 미래의 불안과 맞짱 뜨는 당당함이다. 앞서 밝혔듯, 우리 인간의 오랜 본능은 자연과 함께하는 유목민적 삶이 최고의 행복이었다. 우리가 바라는 그러한 삶으로의 회귀는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회귀는 인간이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살아감의 원초적 귀향이다.
제안하건 데, 설령 꿈일지라도 자연으로의 복귀를 상상하면서 ‘나만의 꿈동산’을 만들어가자. 이러한 상상은 자기 존재를 가장 잘 드러내게 하는 최고의 지름길이다. 또 우리 앞에 놓인 삶의 방해꾼―허영, 억압, 자본, 끝없는 욕망, 외로움, 인정욕구, 죽음 등―과 헤어질 결심이다. 다가올 먼 훗날 당신이 어느 고향에 가더라도 그곳이 당신 스스로를 데려오는 “존재를 밝히는 장소”가 되기를 간절히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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