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의 살아감은 급속한 변화 속에 놓여있다. 아울러 이러한 시대적 상황은 수많은 정보의 홍수 및 자본주의의 맥락과 같이한다. 또한 종교적 분쟁으로 인한 국가 간 살생과 파괴는 일상이 된 지 오래다. 게다가 인류를 위한다는 명목 하에, 전 지구적 개발과 파괴가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역설적으로 인간을 소외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당면(當面)한 상황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미래세대의 희망은 무엇일까? 그 희망을 위해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까? 여기서 이 시대의 거대담론에 의한 대중적 살아감에 익숙해진, 우리들의 삶을 되짚어봐야 할 때다. 또 이 와중에, 나의 살아감의 의문을 인식할 때이기도 하다. 그러한 인식아래 시대의 문제를 진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 본래적―현실 소비주의―삶에서 본래적―미래의 나를 스스로 이끄는―삶으로 변환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따져보면 현시점에서 각자의 무의식적 살아감의 실체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를 인식하고 의식적 벗어남으로 길을 탐색해야 한다. 나아가 삶의 의미를 묻기에 앞서 인간존재의 본질인 ‘자기 삶의 책임’을 말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으로, 나는 자기의 사상(思想)을 필연적(必然的) 감성으로 표현하는 것은 비겁함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의 생각을 그대로 표출하는 ‘우연적(偶然的) 감성’에 충실하였다. 따라서 될 수 있으면 가공력(加工力)의 발휘를 자제하였다. 좀 더 생각을 넓혀보면 살아가는 방식이 자기만의 고유한 영역에서 발휘돼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곧 나의 사상이 타자에게 모순(矛盾)으로 다가설 수 있다. 말하자면 거칠다는 뜻이다. 그러나 각자의 고유한 사상은 살아내야 하고 견뎌야 할 사명이 존재한다. 내가 산다는 것! 어떠한 방식이 유리한지는 각자의 몫이다. 살면서 순간순간 닥쳐오는 예상치 못한 우연에 잘 대처하는 삶은 무엇일까? 혹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순수한 표현은 아닐까. 그러면서 우리는 다가옴을 염려하며 살아감의 책임 안에 존재한다. 실제로 우리가 세상을 느낀다는 사실은 고통과 쾌락의 연속이다. 우리는 그러한 삶을 느끼고 살아야 하는 운명 앞에 놓여있다. 그동안 수 천 년에 걸친 세월 동안 수많은 철학은 말해왔다. 삶의 질문에 대한 궁극의 답을 희망하면서 말이다. 이는 인간이 했던 행위 중에 가장 현명하고도 바보 같은 행위였다. 다만 인간은 진리라는 명제를 위해 전진할 뿐이었다. 그러나 진리라는 허구는 잡히지 않는 허상으로 나타날 뿐이다. 이렇게 우리가 추구하는 진리에 다가섬이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중간임을 알아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진리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무엇이다. 즉 있음과 없음의 공존을 말한다. 이렇게 진리라는 명제는 모호함을 내포한다. 그리고 진리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한 발 앞서간다.
우리는 과거로도 현재로도 미래로도 시간을 잡아두지 못한다. 단지 과거의 알 수 없는 시작과 미래의 끝도 없는 중심에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감에 있어 어느 한 지점을 붙잡고 의미를 단정 짓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다가오는 삶에 대해 ‘무엇이 삶인지’ 답해질 수 없다는 말이다. 아울러 이러한 무궁한 흐름 속에 인간을 정의 내리기는 더더욱 쉽지 않다. 게다가 철학이라는 진지함을 인간에게 적용하여 인간을 단순화하는 것도 무리다. 그렇다면 우리의 살아감은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까? 우둔한 생각이지만, 인간의 살아감은‘우울하지 않게 유쾌하게’ 살아야 한다. 설령 어떠한 비참한 운명이 가로막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유쾌하게 사는 방법을 항상 염려해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의 살아감의 책임이 아닐까. 그래서 개념화되지 않을 모호한 우리의 존재에 대해 조금 더 다가서야 한다. 설명되지 않을 꿈일지라도 우리는 유쾌한 꿈을 꾸어야 하는 책임이 있다.
따져보면 삶의 표현은 큰 이상(理想)을 품어보는 열정을 내포한다. 그 이상과 함께 작은 실천으로부터 살아감의 책임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아감은 나 자신의 이상의 그릇을 키워가면서 채워진다. 이는 여기 있음에 머물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나타난다. 아울러 스스로에게 가능성이 많아지도록 살아감에 대한 나의 열정을 열어놓음에 있다. 지금을 바라보는 당신의 질문은 무엇인가? 세상에 던져진 삶은 어떻게 표현돼야 할까? 그러한 질문을 당신이 하고 있는 중이라면 당신은 무의식적 따라감을 알아챈 경우이다. 나의 의지가 나의 살아가는 풍경이라는 단순함이다. 바라건 데 당신의 여기 있음의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그런 삶으로의 변화를 응원한다. 그다음 의식적 벗어남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살아감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이제 우리 앞에 펼쳐질 파노라마에 맞설 준비를 할 때다. 또 나에게 주어진 책임이 무엇인지 알았다면 삶의 의미는 내가 어떻게 나를 표현하는가에 달려있다. 이제는 나를 무참히 던진 이 세계에서 스스로‘나를 찾아 나섬을 실천하는’ 전사(戰士)가 되는 길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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