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제 어디든지 떠나야 한다. 그리고 무(無)로 향한 연애를 시작해야 할 때이다. 나의 잃어버린 존재를 데려오는 방랑자로 떠나자. 기꺼이 외로움, 고독, 슬픔과도 친구가 되어야 한다. 허리를 곳곳이 펴고 앞으로 전진해야 한다. 모여 있는 곳에서 슬픔을 알고 흩어지는 곳에서 나와의 만남을 기약하자. 그러한 자만이 이 세계를 제대로 알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삶에 대한 책임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다. 아울러 스스로‘인간 공부’를 올바르게 탐구하는 자부심이다.
자기 내면의 사상은 누구에게도 쉽게 허락되지 않아야 한다. 이렇게 자기만의 성(城)이 유일함을 충분히 이용해야 한다. 자기를 곰곰이 생각한다는 것이 가장 소중하다. 그래서 나의 뇌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행위는 스스로를 흥분되게 한다. 충실하고 사랑스러운 상상의 세계에서 충분히 자유를 끌어내야 한다. 그것이 최고의 사유가 될 것이며 네오위버멘쉬를 장착하는 길이다. 명심하자! 사람의 역사는 사람으로 쓰여지는 역사일 뿐이다. 또한 나는 알 수 없는 신의 농간으로 작품화되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의 역할은 지금 이 순간 주인공으로서 충실하다. 비록 내가 가진 주권적 역량이 최고가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우리에게 다가올 새로운 미래의 네오위버멘쉬는 자유로운 영혼을 하늘 위로 보내는 사람이다. 아울러 미리 가본 죽음에 대한 새로운 탄생을 설계하는 자이다. 게다가 항상 기뻐하는 영혼을 장착하려는 진정한 고독의 승리자다. 아울러 너무나 인간적인 미완성의 유한적인 삶을 수용하려 한다. 더불어 자신의 깨달음을 기꺼이 나누고자 하는 인물이다. 물의 흐름이 무엇인지 알고 물이 뜻하는 순리를 받아들이는 살아있는 영웅이다. 그는 세상에 대해 답을 애써 구하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 자연에 대한 순응적 삶을 실천한다. 이와 함께 인간이 자연과 동화(同化)되는 아름다운 결론을 획득할 것이다.
우리의 살아있음을 스스로에게 알리는 길은 자연으로의 복귀다. 우리는 원래 자유로운 유목민(遊牧民)이었다. 어떠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 없는 풍요와 행복한 삶을 낳았다. 이렇게 존재의 물음과 그 존재를 데려오는 데 자연만큼 좋은 환경도 없다. 그곳이 산다는 것에 대한 올바른 실천적 행위다. 그러한 환경에서 당신은 반드시 자기로 살아진다. 우리는 영원한 생성과 소멸의 한가운데 서 있다. 그래서 네오위버멘쉬는 자연으로의 복귀가 얼마나 기쁨인지 아는 자이다. 느끼는가! 보았는가! 알겠는가! 스스로 움직이는 아름다운 세상을. 그야말로 자연은 놀라움 그 자체다. 또 우리가 자연과 함께 산다는 자체가 어길 수 없는 축복임을 찬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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