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칼럼

​​​​​​​네오위버멘쉬를 위하여(42)

조석중 기자
조석중 경영학 박사
조석중 경영학 박사

자연의 평화로운 세상이 원래의 모습이라면, 궁극적으로 평화로워야 진리에 도달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아 진리의 양면성은 파괴 내지는 통합이다. 그래서 인간은 진리를 두려워하는 숙명을 타고났다. 인류가 저지르는 끝임 없는 전쟁과 파괴를 일삼는 행위. 이 또한 평화를 위한 행위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온갖 시행착오가 난무하는 세상. 어쩌면 당연한 일이 된 세상이다. 하지만 동물 중에 가장 멍청한 동물은 ‘인간이’ 아닐까. 그에 따라 진리는 인간에 의해 파괴되고 사라졌다. 따라서 우리가 겪는 지금의 거친 파도 같은 세상. 이러한 세상은 인간이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세상이 아니다. 극히 인공적 과정일 뿐이다. 부정하기에는 두려운 인간들의 삶은 한계가 있다. 그 한계 내에서만 머물고 헤엄치는 어항 속 물고기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이 순간에도 악의적인 몰락의 파도를 일으키며 살아가는 우리들이다. 존재를 망각한 소유와 욕망이 최고의 삶이라고 느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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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만들어 놓은 세상도 자연적이라고 우기면 어쩔 수 없다. 허나 지속적으로 인간의 타락함에서 오는 불안이 지속된다. 그래서 인간은 잡히지도 않는 진리 탐구의 바보짓을 하는 중이다. 이어서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고귀함을 찾으려 한다. 그 중심에 영웅적 서사에 심취하는 우리의 근성은 뭔가? 욕망의 신을 숭배하고자 하는 어리석은 대중을 유혹하는 짓인가? 따라서 논리가 약화되는 이유는 세상의 중심적 역할이 영웅적 서사로 평가되는 경우이다. 비겁하게도 지금 시대의 거대담론과 사상은 영웅을 숭배하는 곳에 머무르고 있다.

인간이 멸종하지 않고 살아가는 배경에는 51:49의 법칙이 있다. 우리는 생존하기 위한 동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절대적 생존에 필요한 구성요인은 학습의 결과보다는 거의 본능에 가깝다. 51:49 중 51의 생존의 역할 49의 파괴의 외침! 이 둘은 30만 년 전부터 내려온 호모사피엔스의 선물이다. 개별적 인간이 사라진 무리 동물의 세상이 작동되고 있는 게 증거이다.

우리는 찰나의 이 짧은 순간에 어떠한 이론적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가? 그 이론이 인간의 삶에 영향력을 얼마나 행사할까. 알 수 없는 먼 과거를 우리는 애써 힘차게 돌진한다. 그리고 인간 특유의 현재라는 의미를 생산하고 있다. 그다음 개발하고 창조한다는 미래의 독약을 마시는 중이다. 다시 한번 말하거니와, 인간 세계가 유지되는 올바른 이유는 한 가지다. 내가 만든 51:49의 법칙이 엄연히 작동 중이라는 사실이다. 51의 생존본능의 올바름과 49의 생존본능에 역행하는 알고리즘이다. 이 현상은 항상 일정하고 변함없이 작동 중이다. 하지만 이 또한 무너지는 순간이 도래한다. 인간이 지금을 멈추지 않는다면 지구라는 행성은 문을 열어 인간을 추방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굳이 인간 무대에서 탁월한 옥석을 가려내는 행위는 슬픔이다. 그러나 진보를 만들기 위한 상처는 필요하다. 또 그를 따르는 대중은 필요충분조건이다. 여기서 네오위버멘쉬는 살아 움직인다. 그는 대중 속 옥석이 아니라, 살아있는 본능의 충실한 사상가다. 호모사피엔스의 추장이 여기에 존재한다. 어깨춤을 유도하는 추장은 어디에 있는가? 51의 순수한 생존 본능을 간직한 네오위버멘쉬가 돌아오고 있다.

본능을 충실히 가져오고 보내는 자야말로 51의 절대자라 할 수 있다. 모든 자연적 유산을 용해시키는 51의 인류는 사랑스럽기도 하다. 그들은 스스로‘자기 자신’으로 살고 있다. 사랑스럽고 용맹한 사람들이다. 51과 49의 대결 속 행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어느 누가 인위적으로 이 엄청난 불변의 법칙을 이제껏 파괴한 적이 있는가. 수학자는 나에게 분명히 웅변하고 있다. 언제나 51:49의 희망이 인류의 보편적 삶이라고! 그래서 사랑스럽다. 51:49의 존재 이유다. 따라서 자기 극복의 한계를 뛰어넘는 51의 위대함을 말해야 한다. 이미 우리에겐 51의 네오위버멘쉬가 장착되어 있다. 이러한 반가운 복음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은 찬란한 무지개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나’ 자신으로부터 영웅으로 살아야 할 책임이 따른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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