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칼럼

네오위버멘쉬를 위하여(38)

조석중 기자
조석중 경영학 박사
조석중 경영학 박사

생존이라는 인생은, 인생이라는 생존에 속임수다. 이제는 인간이 창조한 가치라는 조건에서 탈출하라! 또 다른 가치기준은 무엇으로 말할 수 있을까? 과연 새로운 가치는 어디로부터 찾아야 하는가? 인간이 만들어 놓은 가치기준을 신과 같은 존재로 받아들이는 삶의 조건인가? 어둡고 어두운 시선은 우리들을 맹인으로 변화시켰다. 그리고 나의 흔적을 잃어버렸다. 이제는 흔적을 남겨보는 우상을 알아봐야 될 일이다. 인간의 마음속 그늘이 얼마나 많이 축적되고 있는지는 오랜 생존과 비례한다. 그래서 마음의 소화력을 위해 덜어내는 일이 중요하다. 하지만 소중한 것과 불필요한 오염을 가려내어 덜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인간합리화는 극히 보편적인 자기 사랑임에 틀림없다. 궁극적으로 우상의 정점은 자신일 수밖에 없다. 이에 합당한 책임 있는 과제는 철학하기다. 그러한 철학적 담대함은 살아감의 책임으로 나타난다. 우리의 감정은 순수함과 진보적 가치가 어울리는 철학이어야 한다. 이는 곧 다가올 미래에 철학하기가 인간전쟁에서 무기로 작동될 것이다. 아울러 경이로운 자연으로의 귀향을 예고한다. 그 길목에서 비롯되는 철학의 지혜로운 사랑이 시작된다.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우리들 중의 누구들이 꿈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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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나는 위버멘쉬를 넘어 ‘네오위버멘쉬’를 데려올 참이다. 세상의 물결에 대해 자기 극복을 외치던 위버멘쉬는 우리들이다. 이 대지위에서 스스로 강해졌으며 성숙한 사랑과 극복의 당사자이다. 영원한 시간 속에 순간을 알아채고 즐기는 자이기도하다. 또한 삶을 강력하게 만들고 이 세상 존재자의 생성하는 근본성격이다. 그리고 운명을 사랑하라는 표현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우리는 자신의 길을 가지만 사랑의 힘으로 함께 가려한다. 우리는 영원히 반복되는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자기 힘을 말했다. 그에 따라 새로운 가치를 생성하는 것만이 존재자라는 영역에 진입함을 알렸다. 위버멘쉬는 자기 존재를 밝혀내어 그의 내면으로 초대한 우리들이다. 그다음 우주의 모든 것을‘힘에의 의지’로 명명했다. 또한 우리가 말하는 평등한 가치체계를 무너트리기를 원했다. 말하자면 힘에의 의지를 갖는 비도덕주의를 주장한 것이다. 또 선과악의 이분법적 틀에서 벗어남을 추구했다. 이에 따른 여러 비판에 대해 우리의 해석은 각자의 몫임을 밝혀둔다.

시대가 말하는 거대담론에 그 시대를 비판하는 것은 모험이다. 그리고 그러한 위력(威力)을 견디며 위험하게 사는 용기다. 그다음 견디기를 마다하지 않는 긍지로 무장한 자긍심이다. 그래야 그 시대의 거대담론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이같이 모두를 논리적 이해로 포섭하지 않아도 되는 자기만의 힘이 필요하다. 따라서 타인을 밖으로 나오게 하는 방법은 모순(矛盾)을 주입해야 한다. 그리고 대중이 쌓아놓은 영광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자기를 견뎌야 한다. 지금 영광스러운 위버멘쉬는 지쳐있다. 보라! 이 시대에 개별적 존재를 대중은 감싸지 않는다. 게다가 대중으로부터 자기 극복의 홀로 됨은 외로운 일이다. 그러나 위버멘쉬는 지혜로운 외로움을 견디며 살아간다. 그 자신은 홀로 고독하나 미래를 침투하는 예언자이기도 하다. 그는 우리 중에 누구나이다.

불행히도 대중의 나약함이 지배하는 시대는 지속된다. 보다시피 소수의 권력이 대중의 권력을 집어삼키는 경우이다. 그리고 대중은 소수권력의 노예로 살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네오위버멘쉬”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그는 대중 속에 숨어있으며 무의식의 따라감을 비판하는 중이다. 반면 자기 극복의 위버멘쉬는 우리 곁에 살아있다. 수색해 보라. 찾아야 할 위버멘쉬는 수 없이 떠돌고 있는 우리들의 동지들이다. 하지만 새롭게 나타날 네오위버멘쉬는 이 시대와 물결에서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다만 상상의 곡예를 타면서 잡아야 하는 밧줄과 같다. 그는 하늘 길과 바닷길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구름과 파도처럼 나타나리라. 영광스럽게 살짝 비추는 햇살처럼 새로운 가면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리고 이내 사라지고 나타남을 반복한다. 네오위버멘쉬는 꽃바람을 일으키는 스스로의 우상으로 자라고 있다. 그의 사상은 사랑스러운 훈풍과 함께 우리를 유혹하는 중이다. 그는 스스로 움직이는 경이로움을 찬양하면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 또한 우리 중에‘누구나’이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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