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주체성이 사라진 내면세계에서 나를 발견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대중은 나에게 안락이다. 나는 군중의 일부가 되어 오늘을 안락하게 느낀다. 그리고 나를 타다 남은 재로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의 대결 내지는 탈출의 의지는 나를 밖으로 유도한다. 거기서 얻은 마음은 홀로 건강하게 지내는 고독이다. 나는 고독의 정글에서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정글의 무한함이 선사하는 고독은 나로 태어나는 기로(岐路)이다. 아울러 나에게 명령하는 자기 주체성의 확립이다. 어떻게 하겠는가? 나의 현재 위치에서 말이다.
세상은 영원하고 허무한 사실에 놓여 있다. 다만 지금 내가 존재하기에 나는 오늘을 느낄 뿐이다. 지금의 존재를 표현하고 말하는 주체는 ‘나’이다. 그래서 아무리 작은 존재자라 하더라도 스스로가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지금이 그렇다. 소망하지도, 전진하지도 않는 삶이다. 의미 없음은 당연한 사실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아주 사소한 의미를 더 확장하고 키워 갈 수 있다. 그 이유는 나는 엄연한 ‘여기’에 있는 존재자라는 사실이다. 자연스럽게 ‘나’라는 존재는 앞, 뒤의 영원한 시간 중에 잠시 머물 뿐이다.
지금까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세상을 본다. 아울러 ‘신’이라는 존재를 의심케 한다. 지금 현재 세상의 조정 능력은 무엇인가? 여기를 의심하는 마음은 신이라는 존재를 돌려세운다. 나의 온화함은 신보다 더 현실적이라는 사실이다. 이를 애써 부정하고 스스로 나약하다 하지 말자. 그러면 열정은 저 심연 깊숙한 곳에서 얼어붙고 말 것이다. 인간의 위대함은 신에 대한 반칙에서 나온 결과임에 확실하다. 얼어붙고 움직일 수 없는 영혼의 씨앗을 뿌려댄다. 다시금 그 씨앗을 뿌릴 수 있는 존재는 인간임에 부족함이 없다. 내가 여기서 행한 모든 일이 다시 평가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 이를 안다면 여기에 존재하는 것이 맞다. 우리는 신의 울타리에서 살았던 과거의 사람이 아니다. 지금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서 인간 스스로 ‘새로운 신’을 숭배하고 있다. 그 새로운 신이란, 인간이 파괴하고 창조한 진보의 산물인지는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최종적 신은 ‘내 자신이’ 되어야 한다.
누구나 어느 날 문득 살아감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되는 시기가 온다. 그때 내 눈앞에 보이는 닭이 먹이로만 보이지 않을 것이다. 삶을 변화시키는 시작점은 의외로 쉽게 찾아지기도 한다. 또한 의미를 생산하는 발화 지점은 지금 고착된 생각에서 벗어나는 순간이다. 내가 갇혀 있는 굴레에서 일부러 탈출하려는 의식적 활동은 새로운 각성이다. 이쯤해서 스스로 가야 될 방향은 자연적 현상과 타협한다. 그렇게 되는 순간 자연인이 되는 일이다. 이러한 생각이 드는 건 어쩌면 우리가 만들어 놓은 엄격한 세계가 아닌가? 이러한 소유욕을 생산하는 물질세계로부터 이성적 권태가 찾아오는 중이다. 이제 우리는 본능적 감각을 찾아가는 의식적 벗어남의 중간 지점에 서 있다.
고통에서 새로움을 창조하는 능력은 자기의 순수한 능력이 아니다. 우리가 자연 속에서 발아되어 살고 있듯이 극히 자연적인 순환의 일부이다. 한 단계 한 단계 상승한다는 의미는, 나의 의지로 순간을 표현하는 결과물이다. 인간 삶이 그러한 순간을 생산하지 않고서 과연 무엇을 논할 수 있겠는가? 지금 당장의 어설픈 실존의 빈약함을 던져버리고 과감히 자연적 고통과 마주해야 한다. 그 순간 더 이상 고통은 고통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자연적 고통과 경이로움은 당신을 더욱 강한 존재로 만들 것이다. 지금까지 인간은 자연세계를 외면하고 불편함을 최소화하려는 목적을 수행했다. 그 결과 편리함이란 결과를 가져온다는 명목 하에 인간은 자연을 괴롭히고 재촉했다. 따져 보자! 자연과 함께하는 불편함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아는가? 자연으로 돌아간 순수정신이 알려 주고 있다. 자연을 외면한 인공적 편리함의 속성은 인간을 게으르게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지금이 그러한 시대의 절정이다. 이는 지속적으로 인간을 약하게 만들 것이다.
이제 허약한 우리에게 채찍을 가할 때가 됐다. 살아감에 대한 책임지는 의식으로부터 내 자신을 호출하는 현명함을 가져오라. 그로 인해 우리의 빈약한 열등감은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세속적 세상에서 상대적이라고 할 비교 대상을 염두에 두지 않는 반항 정신이 필요하다. 이러한 정신은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특권으로 이루는 현상이다. 또한 자연과 동화되는 삶 속에서 자기극복의 장인 정신이 나온다. 이로써 자연으로 향했던 실존이 탄생한다. 먼 훗날 다행스럽게 내가 살았던 흔적을 누군가가 흐뭇하게 발견할 것이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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