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칼럼

네오위버멘쉬를 위하여(마지막 회)

조석중 기자
조석중 경영학 박사
조석중 경영학 박사

여기까지 내가 밝혔던 인간의 궁극적 외침은 “자기 극복을 넘어선 나의 힘을 동반한 욕망하는 인간”이었다. 그리고 자연의 경이로움을 알고 나를 찾아 떠나는 네오위버멘쉬를 말했다. 인간은 자기 존재의 밝힘을 찾아 나서는 유일한 동물이다. 흔히 말하는 ‘자아실현’이다. 이는 부정할 수도 없으며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오랜 역사적 시간 속에 우주의 먼지와도 같은 존재라 했다. 그러므로 인간이 살아가야 할 당위성은 여기에서 나온다. 나 자신에게 겸손하고 소박한 발상으로 단순해져야 하는 삶이다. 지금까지 인간이 추구한 가치의 척도는 인간 스스로가 이방인의 역할을 해왔다. 또한 인간의 상상력과 욕망하는 학문적 결과는 가치를 만드는 데 집중되었다. 그로 인해 인간 스스로 그 가치에 소외되는 역설을 살고 있는 중이다. 강조하거니와 인간의 실존은 가치와 등치(等値)되지 않는 가운데 그 빛을 보게 될 것이다. 이로써 나의 존재를 가치라는 사슬로 묶어두지 않는 실험을 시작한다. 아울러 내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한 가치를 허물고 ‘있는 그대로’를 응시한다. 비로소 인간이 추구하는 절대적 진리와 명백한 확신, 그리고 가치의 굴레로부터 해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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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해방을 지향하는 네오위버멘쉬의 삶의 방향은 어느 누구 하고도 비교되지 않는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 아울러 자신만의 시선으로 좋은 것을 추구하는 것이 네오위버멘쉬의 길이다. 또한 기꺼이 자기 몰락을 감수하고 일어서는 자이다. 그 자신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만이, 이 세상을 똑바로 직시하는 시발점이다. 보라! 이제는 나에게 드리워진 흐린 그림자의 허상을 걷어치우고자 하는 ‘자유의지’가 생성되지 않는가? 이는 인간이 다듬어 놓은 역사적 흐름에 대한 고찰에서 발견된다. 내가 해방되는 자유의지의 고집이 얼마나 기쁘게 하는지 말이다. 자기 내면과의 대화 속에서 솟아나는 “나를 이끄는 의지 하나로도”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 누구라도 인간 세계에서 ‘각자의 자기 세계’를 타인이 완벽하게 소유할 수 없다. 따라서 나의 욕망으로 행(行)하는 삶의 방식은 나에게로 ‘귀향’이다. 나를 데려오는 귀향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고 소중한 자연의 질서이다.

자! 이제는 긴 긴 항해의 깃발은 올라가고 나의 배는 그대로다. 거친 파도와 바람은 여행의 동반자일 뿐이다. 완벽한 항해는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스스로 목적지를 향해 또는 목적 없는 유희를 즐길 참이다. 우리는 스스로 항해하는 선장과도 같다. 궁극적으로 나는 외로움과 함께할 것이다. 전체적으로 나의 살아감의 표현은 오롯이 내가 하는 결정으로 이루어진다. 실로, 홀로 건강하게 잘 지내는 고독한 방랑자다. 그러한 운명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인간이 진정한 “네오위버멘쉬”로 탄생할 미래다. 그는 성인도 목자도, 더 나아가 위대한 인물도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 “철저히 자기가 되고픈 욕망에 웃고 울고를 반복하는 사람”이다. 이제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나 자신으로 돼 가는 과정이 어떤 것인지. 위버멘쉬의 자기 극복을 넘어 새로운 위버멘쉬의 탄생은 이 세계의 모든 것은 신비함을 동반한 기쁨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리라. 궁극적으로 네오위버멘쉬는 새로운 창조적 선구자로서 무(無)에서 다름을 생산하는 개척자가 될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네오위버멘쉬는 나를 비롯한 자연의 모든 것이 경이로움이라는 것을 아는 우리들 중의 누구나 될 수 있다. 이와 함께 스스로 귀향(歸鄕)하는 누구나이다. 귀향의 목적은 무(無)로 돌아간다는 것과 동시에 시작의 열림이다. 우리는 열려있는 가능성에 대한 ‘자기 책임’을 다 하기 위해 살 것이다. 또한 우리 모두는 자연과 함께 “찾아 나섬의 살아감”을 실천하는 영웅으로 기억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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