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칼럼

네오위버멘쉬를 위하여(23)

조석중 기자
조석중 경영학 박사
조석중 경영학 박사

종교적으로 해탈했던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내적 자기 성찰과 본래적 자기를 데려오는 실천가인가? 자연의 무(無)를 알았던 최고의 인간유형! 혹시, 흔히 말하는 외부적 조건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닐까. 자기 의지 외에 외부적 환경 변화는 마음을 요동치게 하는 충분조건이다. 외부조건의 요동침에 동요하지 않는 무게중심을 가진 사람들은 많았다. 따라서 실로 강하다는 의미는 강력한 마음을 스스로에게 주입하는 자이다. 그래서 자기 살아감의 강력함은 독립된 인식의 세계가 넓어진다. 즉 자기 존재를 데려오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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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생각하건대, 지금을 그대로 바라보고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도 방법일지 모른다. 이 불편하고도 부조리한 세상에 응수하는 방법이다. 세상이 비웃듯이 세상에게 비웃고 싶다. 너의 뜻대로 아파하지 않을 것이다. 되는대로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 그러나 내버려 둬도 스스로 쓰러지지 않는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지금까지 깨달은 바를 나에게 알리는 것이다. 아~질문이 난무하는 이 세계! 삶의 방식에 지쳐가는 사람들. 하지만 무심한 존재밖에 있는 모든 것은 그냥 흘러간다는 사실이다. 이같이 존재 밖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흐르는 물과 같다. 세계는 영원한 반복의 연속이다. 우리는 연속되는 소용돌이에 갇혀 살아간다. 미세한 차이에 불과한 살아감을 반복한다. 이러한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인간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살아가는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저항해야 한다. 바보 같은 생각이다. 어리석다. 이 순간 소용돌이에서 탈출하려는 시도는 뭔가? 결핍의 반항이다. 조금 더 큰 원을 그리기 위한 발버둥이다. 결핍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결핍이 주는 냉정함은 열정을 수반해야 끓어오른다.

관념에 머무르는 작은 원에서 탈출은‘철학하기’이다. 철학하기의 출발은 더 큰 원을 그리기 위한, 이 세계의‘있음과 없음’을 이해하는 주관적 방식이다. 그리고 나로부터 존재를 데려오는 일이다. 정제된 사유를 통한 존재를 밝혀내는 작업. 그렇게 존재는 나로부터 밝혀지는 경이로움이다. 무(無)라는 이 거대한 물음이 뜻하는 바는 새로움의 발견이다. 열려 있는 창은‘아무것도 없음’으로부터 시작이다. 아울러 무한 가능성을 내포한 기회라는 열림을 보는 시각이다. 여기서 새로운 시작이 발견되는 지점이다. 그때 비로써 우리가 아무것도 없음의 의미를 이해할 때가 올 것이다.

각 세대의 둥근 원은 결핍으로부터 더 큰 원으로 진입한다. 자기 불만에 의한 욕망에 따른 생성철학의 배설이다. 인간은 자유를 갈망하는 존재다. 우리를 가두는 거세게 돌아가는 소용돌이가 휘몰아친다. 이 소용돌이가 나를 가두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돌발적인 일을 감행해야 할 때다. 강력한 순수함이 더 큰 원을 만들어가는 ‘의지’이다. 아직까지 작은 원은 변화되지 않는 일상의 반복 횟수를 경험한다. 이러한 반복이 지루하다고 느껴질 때마다 더 큰 원으로의 탈출이다. 그것은 창조의 시작이다. 하지만 궁극의 결과와 목적지가 없다. 다만 새로움과 창조의 반복이 오래 지속되게 하는 방법만 있을 것이다. 여기서부터 의식적 벗어남이 꿈틀거린다.

내가 그리는 원만큼 또는 크기만큼 철학은 넓어진다. 그래서 생각의 깊이만큼 사람은 위대해질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생각하지 않으면 동물에 가깝게 살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동물취급을 받더라도 분노할 당위성은 약화된다. 살아가면서 내가 그리는 무늬는 사고력의 깊이만큼 표현된다. 그 무늬는 과거가 된다. 다시 그것을 꺼내 보았을 때가 올 것이다. 과거는 낯선 손님처럼 다가온다. 따라서 무심코 지나간 것에 대한 새로운 고찰이 요구되는 순간이다. 지나간 역사라지만 나의 서사적 흔적이다. 나에게 연민을 선사하고 실제로 내가 그렸던 무늬의 경이로움을 이해하자. 그 경이로움은 내가 지나쳤던 무심함 속에 있다. 경이로움! 내 앞에 펼쳐진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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