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칼럼

네오위버멘쉬를 위하여(22)

조석중 기자
조석중 경영학 박사
조석중 경영학 박사

우리는 예측 가능한 일에 대해 두려움을 해소한다. 하지만 예측 불가능하거나 모호한 일에 대해 불안과 두려움으로 마음을 흩트려 놓을 수 있다. 특히 자존감이 낮아졌을 때이다. 이는 부정적 감정이 상승하여 타인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게 된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어딘가 부적절할 경우 자존감이 낮아진다. 이는 곧 스스로에게 불만이나 부끄러운 생각으로 채워진다. 이로써 마음가짐은 좁은 협곡을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조급함에 노출된다. 사람이 예민해진다는 것은 모호함에 쉽게 마음을 편안하게 할 수 없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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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나간 과거를 배우는 이유가 있다. 미래를 밝혀보려는 오만함이 여기에 도사린다. 한편으로 지금이 의심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아울러 미래의 모호함에서 오는 확신을 갈구하는 욕망이다. 그래서 시간을 살아감에 있어 공간의 3차원을 통찰해야 한다. 과거가 주는 교훈과 현재가 질문하는 의심스러움이 미래를 밝히려는 정신이다. 정신을 풍성하게 하는 요인은 항상 깨어있는 자신을 느끼는 것이다. 스스로 뭔가를 밝혀보려는 시도는 나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이러한 시도는 최종적으로 추구하여야 할 자유로의 외침이다. 또한 철학은 나에게로 돌아온 주관적 성찰에서 비롯된다. 이어서 나에게 던지는 질문으로 시작된다. 지금의 사태(事態)를 제대로 파악하는 냉철하고도 엄격한 자기 검열의 과정이다. 이윽고 냉철한 사유가 찾아올 때, 그것이 곧 나의 자유를 획득하는 길이다.

칼 막스의 ‘정신적 자연스러움’은 들에서 자라는 들풀처럼 생존하려는 강렬함이 있었다. 그가 살았던 시대가 괴로운 현실이었다. 그에게는 미래의 새로움과 미래의 창을 열어보려는 반항 정신이었다. 그의 방식대로 삶을 살아야 하는 운명은 파괴적 자기 성찰을 견뎌야 하는 운명이었다. 그러한 운명이 미래를 내다보려는 의지로부터 나온 것이다. 거친 파도를 헤치고 나아가는 배와 같다. 역사가 말하듯, 스스로 견디는 자는 광인(狂人)이다. 커다란 미래 속 변화의 물결에 큰 파동을 일으켰다. 그리고 시장 속 군중들은 파동의 원인자를 숭배하고 따랐다.

항상 미래를 생각하는 자는 과거와 현재를 진단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반항과 저항을 함으로써 괴로워하는 어리석음을 방출한다. 이는 선지자의 몫이다. 이 세상에 인간인식의 성숙함을 이끌었던 사람들이 존재했다. 그 시대 사람들이 보기엔 어리석은 존재였다. 무엇보다 광기를 보였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유를 잃어갔다. 비록 자유를 잃어 갔지만 영원한 자유를 획득했다. 자유의 의미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기는 어렵다. 하지만 달려드는 자유를 타락의 발판으로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그들은 자유라는 이 세계의 공허함을 알았었다. 그렇기에 자유가 어디에 있는지 깨달은 사람들이었다. 자유라는 이념은 반드시 구속 내지는 부자유와 겸상(兼床)하기 마련이다. 자유를 알았던 그들의 업적은 거대권력에 대항했던 공통점이 있었다. 스스로 의식적 벗어남을 감행했던 사람들이었다. 궁극적으로 자유로운 사람은 위험하게 살아갈 탐험가다. 또 어둠의 세계를 밝히려는 광인을 자처한다. 더 나아가 실천적 자긍심으로 무장한 자기의 존재를 최고의 시선으로 밝히려는 자이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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