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 속에는 모순(矛盾)이 수없이 발생한다. 서로에게 위안거리다. 이래도 저래도 인간은 모순이다. 사람은 어떻게 하든지 모순을 일으키고 고뇌하면서 상승한다. 따라서 완벽하지 않을 인간의 나약함은 살아지는 대로 살아지지 않는다. 이러한 살아감에 답을 구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우리는 답을 찾고 있는 중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다. 보고 있는 실체가 전부라고 생각하면 가장 우둔한 자이다. 우리의 마음은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있다. 이 마음을 밝혀내는 작업이 우리가 할 일이다. 상대적으로 전부 밝혀낼 수 없는 것이 마음이다. 말하자면 인간이 발산하는 이성과 감정은 새벽의 여명과 같다.
어둠이 겉 치고 밝음이 도래하는 ‘그 순간의 감정선’이라 할 수 있다. 모호하기 그지없는 나에게 드리워진 이성과 감정이 그렇다. 스스로 위안을 하자면 아직 파악되지 않는 순수다. 하지만 우리는 대중 속에 갇혀있다. 대중 속에 침입한 거대담론의 고착화가 우리를 경직시키는 요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탈출을 감행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고정관념을 파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한 작업을 위해 용기와 욕망을 열망해야 한다. 그래야 순수함의 감정 선을 걸러낼 수 있다. 이러한 의식적 감각이 무의식의 따라감으로부터 의식적 벗어남을 향해간다. 그 반항이 나를 데려오려는 욕망이다. 지금 이 순간 숨어있고 가늠하기 어려운 자아가 말한다. 나를 데려오는 과정에는 수없이 많은 외적 요인이 있다고.
존재하는 또 다른 나! 이를 인식하는 것은 인간이 실행하는 성찰이 아니겠는가? 너무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 나의 소멸이 이를 때까지 나의 존재감이 도사린다. 새벽의 여명과 같다. 그래도 진리의 존재는 은폐되지 않을 희망이 있다. 그 진리를 드러내게 하는 것도‘나’이다. 알고자 하는 희망은 결코 끝나지 않을 우주 운행과도 같을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은 결코 운행을 중단하지 않는다. 역시나 나는 희망을 걸어보는 연애를 감행할 뿐이다. 나의 존재는 여기에서 살아감에 대한 책임이다. 그 책임은 살아가는 과정 속에 드러난다. 그것이 나에게 주는 공손한 응답이다.
우리의 살아감은 엄격히 책임지는 길 위에 서 있다. 그리고 나 자신을 스스로 책임지는 과정이다. 그 와중에 평탄치 않은 현상과 마주한다. 또 게으름의 순간을 경험한다. 게다가 그 길의 마디마디 수많은 시행착오를 맞이한다. 그로부터 다가옴에 대한 두려움, 어두움, 모호함이 낯섦의 흥분을 맛보게 한다. 내가 게으름을 피워도 세상은 말이 없다. 우리는 무심하기 그지없는 세상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저기 수평선을 바라보는 당신의 뒷모습을 상상하라! 쓸쓸함과 고요함으로 더욱더 당신을 웅장하게 하리라. 또다시 스스로 수평선을 바라보는 너의 뒷모습을 관찰하라! 이제는 알아야 한다. 과거와 현재를 바라보는 관점은 항상 늦은 감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당신의 뒷모습이 고독한가? 그러면 자신으로 살고 있는 거다. 고독을 느끼는 행운이다. 자기를 본다는 것은 최고의 성찰이며 반성의 근거로부터 나온다. 그것은 인간의 영역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다.
성찰은 과거의 반성과 현재의 느낌으로부터 나온다. 반성은 늦음이라는 성찰이다. 잘못이 아니다. 이러한 인식은 다가옴의 알 수 없는 세계를 탐구한다. 이렇게 우리는 모호함을 견디는 자세로 거듭난다. 견디는 자는 자기 세계를 불안과 염려하는 방식으로 성찰한다. 이러한 인식의 세계는 인간의 고유영역이다. 이어서 인식의 세계를 넓히는 만큼 진리를 향한다. 그렇게 지평을 넓히는 당신의 해석적 관점은 다양해질 것이다. 앞서 말했듯 진리라는 표현은 나타나지만 숨겨져 있다. 그것은 우리가 탐구한 세계의 다양함에서 오는 선택지에 달려 있다. 진리를 표현하는 올바른 방법은 절대적이지 않다. 다만 최선을 다한 탐구의 영역에서 동감(同感) 수준에 달려있는 문제이다. 진리에 목마르지 않아도 될 일은, 진리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스스로 길을 만들어낼 뿐이다. 진리는 꾸준히 존재하고 있으며 변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도 인간세계의 진리는 나타나고 사라지고를 반복한다.
여기서 변화되는 진리를 포착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그로 인해 세계를 해석하려는 인식의 지평을 넓힌다. 이러한 시도로써 진리에 접근하는 행운을 얻을 기회를 갖는다. 따라서 인식을 바탕으로 한 해석의 주체적 감성이 필요하다. 아울러 감성을 유발하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이다. 이렇게 우리는 악의적이고도 선한 인식아래 살고 있다. 또한 자기 몫으로 주어진 불행과 행복의 추를 왔다 갔다 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 줄타기에 열중하고 있다. 더불어 우리의 반항은 시간 감옥으로부터 과감한 이성적·본능적 탈출로 표현된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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