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칼럼

네오위버멘쉬를 위하여(17)

조석중 기자
조석중 경영학 박사
조석중 경영학 박사

우리가 진리를 갈망하는 이유가 있다. 묻고 답하는 동물이기에 그렇다. 내면적 갈등이 본능적 불편함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또한 진리가 왜곡된 사실을 불편해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살아간다. 그에 따라 어색한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진리를 갈구한다. 그 불편함이 사라지면 또 다른 불편함이 다가오는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따라서 어떠한 경우이든 진리에 대한 설명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진리의 갈구는 편해지기보다 불편한 가운데 가치가 있다. 염두에 두어야 할 건, 맹목적 믿음으로부터 진리의 숭배정신이다. 때론 불편한 진리를 찾아 나서는 용감한 정신을 갖추기도 해야 한다. 그래서 인간은 모호함을 견디는 운명으로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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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바라보는 세계는 나의 역량으로 나타나는 표현이다. 그래서 지나감, 여기 있음, 다가옴을 인식하는 본성이 따른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하면서도 원초적 발상의 기초이다. 이를 바탕으로 세상과 대면한다. 우리는 홀로 있지만 나의 존재는 타인에 의해 밝혀져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고독한 자이다. 동시에 서로 있음을 찬양한다. 이러한 과정이‘인간의 본성적 가치’를 찾아 나섰다는 선언이다. 그러나 본성이 다듬어지는 지점을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면 나의 존재가 시간과 공간 속에서 단순히 견디는 표현방식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우리의 본질은 무엇인가? 본질은 어떻게 다듬어지는가? 그 본질은 ‘가치’ 아니겠는가. 지금을 사는 실존이 본질을 앞서야 하는 당위성은 어디인가? 본질은 내가 ‘나’인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나의 구실을 찾았다는 본질은 나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기본이다. 그다음 실존적 과정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놓는다. 실존적 심연의 가치는 무엇으로 발휘되는가? 자신의 힘에의 의지를 동반한 저항과 고뇌의 수고 없이 가치는 발생하지 않는다. 가치는 타당하기에 가치로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는 가치를 보고 노려봐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 그 가치를 실현시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자신이 위험하지 않으면 출렁이는 다리를 건널 수 없다.

여기서 세상 속 본질이 변하기를 바란다면, 깊이 파고들어 가는 생각의 수고로움이 작동해야 한다. 우리의 기능적인 역할에 충실한 본질적 삶이 존재한다. 또 본질을 넘어서려는 실존의 위대함도 있다. 이를 인식하는 고뇌란 무엇일까? 생각하기의 연속성에서 본질적 이상은 발견된다. 이어서 정신의 배설을 충실히 하였을 때가 올 것이다. 그리고 정신의 맑음은 지속된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심연의 고통’은 필수적이다. 이러한 고통은 질적 가치를 높이는 방법이다. 이에 반하는 생각의 게으름은‘막살기’를 보여줄 뿐이다. 막살기는 소음이 난무하는 드러남을 기뻐할 뿐이다. 그 결과 인간존재를 스스로 세상 밖으로 들어내지 못한다. 여기서 잊지 않아야 할 건, 가치를 넘어서려는 자세이다. 정의하기 어려운 인간본질을 넘어서는 일이다. 실로 가치체계에 매몰되는 자기를 버려야 한다는 사실이다. 세속적 악마의 속삭임으로부터, 나 자신이 가치를 남발하는 순간을 견뎌야 한다. 자유를 타락으로 멍들게 하는 바보는 되지 말자!

우리는 고통이 생산되는 지점에서 살아나고 강해질 수 있다. 인간이기에 그렇다. 자유를 얻는다는 표현은 이렇다. 고통을 기꺼이 마주하겠다는 소명감에서 비롯된다. 여기서 진정한 자유를 말할 수 있다. 또 표현이 나타내는 그림은 깊은 감수성으로부터 다채롭다. 인간의 감수성은 고상함 그 자체다. 시대를 아파하는 느낌이 동반 돼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다가오는 불편함을 피하지 않는 것은 살아감의 책임이다. 이와 함께 아무나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심연의 탐구가 필요하다. 탐구와 저항은 지금의 거대담론에 대한 비틀기다. 그래서 모험을 감행하는 이 시대를 관통하려는 광기의 발산이 요구된다. 이 시대를 의심하고 비틀겠다는 다짐이다. 궁극적으로 나의 품위를 높이는 행위는 철저한 감수성으로부터 시작이다. 이로써 자유정신을 확보하는 길로 들어선다.

그리고 여기 있음에서 나를 가만두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세운다. 아울러 의식적 벗어남의 반항을 시작한다. 그 의식을 갖는 자는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사유한다. 더불어 자기를 안으로 유혹한다. 끊임없이 유혹하고 내면으로 이끌게 된다. 비로써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시야를 확보한다. 그는 자기로 산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는 자이다. 자각(自覺)은 사유하는 궁리거리가 주는 의미를 묻게 된다. 지금의 여론, 교리나 전통에 대한 의문이며 질문이다. 궁리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무거운 중력에 대한 꿈틀거림의 시발(始發)이다. 또 주변의 환경을 변화시키겠다고 파동을 일으키는 주동자다.

이어서 미완성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삶과 사유의 정점은 새로운 문제를 제시한다. 그러한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또한 모든 미완성은 버리는 것이 아니다. 후세대에게 물려주어야 놀이 방식이다. 우리가 남겨놓을 미완성의 세대적 연결이 이러한 숙제에 대한 놀이다. 비록 미완성이라 할지언정, 우리의 책임은 후세대에게 최소(最小)한의 미완성을 넘겨주는 일이다. 그래서 최소의 미완성은 완성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드리워진 허무함을 새로운 가치로 변하게 하는 재산이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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