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가? 우리는 분명 꿈꾸고 소망하는 동물이다. 아니다! 꿈이 나를 깨우고 있는 중이다. 꿈이 존재하는 이유는 삶을 예고하는 드라마다. 따라서 꿈에서 바라본 세계를‘이상(理想)’이라고 해야 한다. 꿈을 꾸는 자는 살아있는 사람이며 깨어있는 실존이다.
더불어 무의식적으로 이상을 먹으며 자신을 소화시킨다. 그로 인해 이상은 궁리(窮理)로써 다가오는 희망으로 보답한다. 희망하는 정신은 잠들어있는 세상을 깨우고자 하는 각성이다. 이어서 깨어있는 정신은 스스로 뭔가를 얻으려는 속셈이다. 그래서 궁리하는 자는 꿈을 꾼다. 그리고 삶의 전반적인 소화력을 강화한다.
지금 무섭게 꿈이 사라지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게으름과는 비교가 안 되는 침묵이다. 이 침묵은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 지나간 소음은 잠들어 버렸다. 과거에 전체주의가 인간의 쓸모없음을 지향했다. 오늘날은 자본이라는 거대한 힘이 인간을 소외시키는 힘으로 작용한다. 자본이 잠들게 하는 분야는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생각해 보라! 자본은 역설적이게도 꿈과 욕망을 거세시킨다. 그리고 우리는 자본에 구속되어 살고 있다. 그 굴레에서 우리는 자유를 스스로 구속시키며 살고 있는 중이다.
지금을 보자! 우주-지구-나, 움직이지 않는 현재의 게으름이다. 이제는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지루하다. 지금은 움직여야 하는데 말이다. 권태와 지루함이 낳은 허무함이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가장 무서운 허무함의 중력이 짓누르고 있다. 우리는 궁리거리를 궁리해야 한다. 이대로 잠들 수 없다. 거세된 본능적 자아를 깨워야 한다. 항상 깨어있는 가운데 철학적 성찰이 나온다. 약한 정신은 수면(睡眠) 중에 침묵을 강요받는다.
반면 깨어있고 궁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세상은 살아 움직인다. 저항과 반항으로 인해 하늘과 대지는 요란하고 진동과 함께 지각이 흔들린다. 이렇게 살아가는 장(場)에서 힘과 힘이 대결할 것이다. 그곳에서 승패가 기다린다. 그리고 활발한 화산이 진동하게 된다. 그 주변에서 우리는 희극과 비극을 다 같이 응원한다. 그곳이 바로 자연스러운 인간 투쟁의 놀이터이다. 지나간 역사의 한 축에서 발견됐던-원시공동사회의 아름다움-곳이다. 가장 인간적인 싸움이 시작되는 지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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