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칼럼

네오위버멘쉬를 위하여(30)

조석중 기자
조석중 경영학 박사
조석중 경영학 박사

교육자와 사회학자가 해야 할 사명이 있다. 그것은 고귀함을 가르치는 행위다. 교육 담당자가 습득한 지식을 타인에게 단순 주입하는 것은 위험하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 변화로만 그칠 뿐이다. 정제된 단순한 정보의 전달 행위로 전락한다. 여기서 말하는 참교육의 본질을 고찰한다. 습득한 지식의 향연을 지혜로 변화시켜 깨달음의 사상을 서로 교환해야 한다. 또 지나간 과거의 고찰에서 객관적 사실에 포획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교육의 목적이 지식 전달 수단으로 이론에 정체된다면 교육이 아니다. 지식인과 철학자가 해야 할 임무는 자기가 습득한 지식을 넘어서야 한다. 말하자면 지식에서 깨달은 새로운 창조적 사상을 말해야 한다. 세상에 알려진 객관적 지식은 얼마든지 각자의 노력으로 습득 가능하다. 이에 반해 새로운 지평은 평준화된 지식 울타리를 넘어서는 일이다. 또한 더 높고 깊은 각성(覺城)을 수혜자에게 전달하는 의지다.

광명시청_메인중앙하단_260824
안성시청_바우덕이축제_메인 하단_260908

예를 들면, 따르는 자에게 어떠한 지식을 논하지 말라. 단편적 지식의 용량을 가늠하는 자만큼 어리석은 이도 없다. 지식을 넘어선 새로운 주체적 사상의 공유를 시도하라. 보편적 지식 언저리에서 조금 더 지평을 넓히려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넘어섬의 창조성을 말해야 하고 논쟁을 벌여야 한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여기서 발휘된다. 이는 곧 서로가 느끼는 ‘공감 수준’이다. 이 명제 앞에 공감의 폭이 넓어진다면, 그 가치를 더욱 높이는 장(場)으로 들어선다. 여기서 진리는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는 진리에 근접하는 성과를 가져온다.

지금을 살펴보라! 위계적 질서가 인정되는 인간 세계다. 이를 바탕으로 명령하는 자는 명령을 수행하는 자에게 가학적일 수 있다. 집단에서 발휘되는 이기적인 자기 생각의 기준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이와 함께 지배적 습관이 길러지기 때문이다. 사람 관계의 위계적 질서로 인해 자기 행복을 강탈당하기도 한다. 두루 알다시피 자연환경의 정글 속에서 이뤄지는 생존 법칙은 심판 대상이 아니다. 어쩌면 자연에서 탄생한 우리도 이러한 생존 법칙의 엄격함에 놓여 있는 것 아닌가? 따라서 세상의 부조리가 낳은 불편부당한 일이 얼마나 많은가? 이에 대해 생존 자세는 달라져야 한다. 내가 스스로 강해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유욕에서 나오는 집착은 얻을 수 있는 것과 잃을 것의 양면을 갖는다. 이는 갈등을 유발하는 최고의 재료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거리는 스스로를 피로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반면 소유욕으로부터 탈피하는 습관은 새로운 세계로 진입이다. 육체적 피로의 감소는 물론 정신적 안정감을 유도할 수 있다. 실제로 마음의 무게는 무거운 집착거리를 소유한 데서 유래한다. 전체적으로 보아 물질적 소유와 집착거리의 가져옴은 탈가치를 유도한다. 물질 소유와 집착의 관념은 시간이라는 명제로부터 생산된 구속이다. 인간은 원래 없음의 자유롭고 홀가분한 마음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사적 소유의 병을 낳은 후, 자유로운 영혼을 팔아먹게 된 것이다. 이것이 소유욕의 양면이다. 우리는 유기체적 소화력의 자연스런 기운을 깨달아야 한다. 물론 우리의 정신적·육체적 소화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게 자기 존재를 알아가는 단계이다. 우리의 존재론적 나아감의 시발이다.

내적 소화력을 상실한 자유가 시간이었던가? 삶 속에는 지나감, 여기 있음, 다가옴에 대한 우려를 갖는다. 시간이라는 명제가 가져다준 비극이다. 그리고 애써 그 비극 속에서 희극을 창출한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적 시간에 구속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여 있다. 생각하지 않으면 좋으련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사람의 운명! 떠오르는 생각에 때론 지겨워지기도 하다. 그렇다면 시간에 의존하는 우리는 매일 가면을 쓰고 다니는 광대와도 같은 존재인가? 우리 시대의 가장무도회 같은 사회는 어떠한가? 현대적 삶은 자기 자신의 고유한 사상을 보이는 것보다 타인의 평가를 두려워한다.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한 치장에 전념할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쓰고 다니는 가면은 날이 갈수록 두터워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부끄러움이 사라진다. 이것이 시간과 소유욕이 가져다준 인간의 인정 투쟁이라는 질병이다. <다음 주에 계속>

수원특례시의회_08 (265x118)
260623_인천도시공사

저작권자 © 중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

관련 기사

0개의 댓글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