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집념도 갖지 마라. 슬픔도 생각하지 마라. 그냥 흘러간 대로 내버려 두면 된다. 그에 대한 결과는 스스로 나타나는 자연현상이다. 이제 그만 우울함을 작동시키지 마라. 우울함은 나를 파괴하고 타락으로 이르게 한다. 반동적으로 너를 안고 힘차게 흘러가라. 우리는 일어서야 한다. 넘어지지 않겠다고 말해야 한다. 그것이 또다시 일어서려는 인간의 삶이다. 그래서 의식적 벗어남은 나를 지배하는 소질이다. 우울한 생각을 멈춰라. 우울하게 작동하는 모든 생각은 반드시 자신을 파괴한다. 자신이 극복해야 할 문제는 멈추는 것이다. 그러한 생각과 유혹이 찾아올 때, 멈춰 있으라는 신호다. 정신을 흐릿하게 하는 행위는 반드시 우울을 가져온다. 그 우울을 자주 접하다 보면 존재 가치를 스스로 하락하게 만든다. 역동적으로 우리의 행위는 유쾌해야 하고 철저히 건강해야 한다. 사람은 그래야 한다. 불행한 맛을 본 인류가 웃음을 고안했듯이, 철저히 우리는 유쾌해야 한다.
그래서 자신에게 떳떳한 사람이 돼야 한다. 매 순간 스스로 크나큰 위로가 되는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 그 누구도 쓰라린 고통을 너와 함께하지 않을 것이다. 오로지 자신이 건너야 할 출렁이는 구름다리다. 그 위에 여기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올바로 바라보고 살아지게 된다. 보라! 우리에게 미래는 도래하지 않았다. 나를 둘러싼 매 순간이 물과 같다. 자신의 사상을 물 같은 생각으로 흘러보내라. 아무 걱정하지 말고 “흘러간 대로 세상을 듣고 바라보라.” 그러면 내일이 온다. 그리고 또 견디는 것이다. 이게 인간이라는 병이자 ‘자기 사랑’의 연민이다.
우리는 미래의 일을 확신할 수 없다. 다가올 모호함의 고통이다. 그래서 자유를 타락으로 승화한다. 이러한 관념 때문에 인간은 두려움을 발견했다. 이 두려움은 자기 안전을 확보하려는 오래된 본능과 연결된다. 두려움이 커지면 ‘자유정신’을 갖지 못한다. 우리의 대부분은 미래에 도래하지도 않는 일에 비겁해진다. 그래서 현대적 의미의 ‘불안장애’를 대부분 갖고 산다. 이러한 이유로 인간은 애써 신을 창조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신의 무한 능력을 창조하여 두려움을 감소시켰다. 인간은 오롯이 불안감을 해소시키지 못했다. 나약한 본능은 다가옴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사는 운명이다. 궁극적으로 인간은 ‘자기 자신으로 돌아와야 한다.’ 실천적으로 내 안에 있는 자신을 먼저 신뢰하라. 홀로 있는 시간을 두려워한다면 성찰과 자기 반성은 획득하기 어렵다. 여기서 말하는 ‘자기와의 대화’의 시작이다. 이러한 자기 성찰은 무의식적 따라감을 거부하는 용기이다. 아울러 깨어 있는 의식 속에서 벗어남을 창조하리라.
이제까지 인간이 신에게 의지하고 살았다. 이제는 신으로부터 출가할 때도 되었다. 아울러 자신만의 실천적 사명을 찾아야 한다. 나를 움직이는 의지를 데려오는 문제다. 우선적으로 나를 위한 연민과 데려옴의 발상이 필요하다. 이로써 나를 알기 위해 필요한 행위는 ‘홀로서기’이다. 이것 없이는 제대로 된 나를 발견하지 못한다. 군중 속에서 나를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자신을 소음이 난무하는 곳에서 조용한 곳으로 데려와야 한다. 사람의 운명적 사명감이란, 나만의 공간을 확보하는 살아감의 독립적 사고(思考)이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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