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현재, 미래를 통합하는 사상은 무엇일까? 성인(成仁)이 되고자 하는 권력 의지의 표현이다. 여기서 돌이켜보고 바라 봄과 찾아 나섬을 생각해 보자. 이에 따른 우리의 궁리하는 모습은 무엇으로 나타나는가? 바다의 물결이 바람과 함께 한없이 춤추는 것을 보고 있다. 이것이 지나감, 여기 있음, 다가옴의 현상이다. 적극적으로 우주의 탄생을 밝혀내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우연히 만들어진 이 세계다. 여기서 경이로움을 느끼는 것이 더 고귀하지 않을까? 또 자기 안에 도사리는 내적 충만을 염탐하는 자세다. 궁리하는 자는 현재의 사실을 받아들인다. 현실을 파악하는 사람은 들에 피어나는 들꽃처럼 살아간다. 그는 아무것도 요구하지도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오고 가는 대로 자신을 맡길 뿐이다. 더구나 들풀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다.
그리고 억세게 살아가는 지혜를 얻는다. 최소한 자연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홀로 견디는 용맹함이다. 우리는 세상의 무심함에 똑같은 무심함을 선사할 이유가 없다. 세상이 보이는 자연스러움에 굴복해야만 한다. 그 이유는 인간이 가진 동물적 본능이 있다. 그 외에 생각이라는 부가적(附加的) 쓸모가 있다. 그에 대한 책임을 자연에게 가져야 한다. 인간과 자연이 99% 닮았다고 한다면, 인간은 1%의 숭고함을 자연에게 바쳐야 한다.
그 숭고함이 말하는 의미는 ‘공감과 사랑’이다. 공감이 행사하는 의미가 무언가? 때론 우리는 사실을 외면하고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이러한 반복적 행위는 자기 인격을 격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올바른 경청은 현실을 파악하고 되물어 보는 용기다. 물은 흐르는 곳에서 자연스럽다. 또 언어와 함께하는 사람은 듣고 말하는 데서 자연스레 살아간다. 이러한 행동은 의식적 벗어남으로 이끈다. 이를 바탕으로 외면하지 않는 용기는 “나”로 산다는 책임이다. 그래서 현실을 받아들이는 자가 되어야 한다. 당연히 스스로 보고 들어야 한다.
이어서 존재라는 물음에 답하는 자로서 새로 태어난다. 현실을 산다는 것은 해석적 올바름에 대한 응답으로 귀결된다. 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현상에 대해 기꺼이 응답을 요청받아야 한다. 그에 따른 정당한 응답 안에 삶의 정당성이 꿈틀거린다. 그 물음에 답하고 실천하는 자세가 올바르다. 그리고 지금을 해석하는 인간 존재의 정당성이다. 더불어 자기를 끌어안으려는 시도가 우선시돼야 할 일이다. 따라서 지금 시대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그러한 인간은 ‘가장 최고로 고민하는 자기 사랑 행위’를 실천하는 자이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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