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적 가치는 현재를 노려보는 능력에서 나온다. 가치는 타당하기에 가치로 존재할 수 있다. 가치를 보고 노린다는 의미는 나의 의지의 발휘다. 이것이 순간을 사는 역량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과거와 미래는 지금 여기에서 생산된다. 하지만 현실적 삶의 조건에서 존재란 밝혀지지 않는 숭고함이다.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다. 그에 따라 우리가 추구하는 진리는 나타나지 않지만 보여지기도 한다. 궁극적인 창조적 가르침의 열매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간을 동시에 인식하고 살아가는 인간은 무엇으로 나타나는가? 또한 실존적 가치를 어디에서 찾는가? 현재 너의 시선은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 이렇게 스스로 너의 정신이 올바른 시선 위에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그것은 나의 현재가 ‘무의식적 따라감에 존재하는가? 의식적 벗어남을 추구하는가?’의 문제이다. 즉 시간 감옥으로부터 ‘너 자신 스스로 보고 스스로 듣는 중인가?’ 묻고 있다. 답해보라!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여기 있음에서 바라본 세계를 어떻게 해석하는가?’의 문제다. 말하자면 하루라는 관념과 전체적인 살아감의 동일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았던 지난날을 회상해 보면 한 토막으로 모아진다. 지나간 과거지만 아득한 옛날로 느껴지지 않는다. 이렇게 짧은 순간을 만드는 게 인간의 관념이다. 그래서 우리는 찰나를 지나고 찰나를 살아가는 운명이다.
깨어나라! 무궁한 우주 속에 먼지와도 같은 우리 존재는 자존심을 내세울 위치인가? 어쩌면 이 순간을 표현하는 몫만큼만 살아지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순진하게 자연과 같이, 있는 그대로를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 볼 수 있다. 굳이 자유라 표현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있는 그대로를 살아가는 살아짐을 무어라 표현할까. 이게 자유인가? 자유가 내포하는 타락의 근거는 많다. 또 자유에게 제공하는 원인이 타락이다. 이렇게 자유는 자유로부터 타락의 공포와 함께한다. 보라! 우리의 임무는 자유로부터 공포를 해소하는 일이다. 다행히도 나는 타락의 근거를 제거하는 방법을 자연에서 엿보았다. 그리고 타락의 근거인 권태와 허무함을 자연에서 잊기로 했다.
시간의 과거, 현재, 미래를 바라봄은 거대한 인식능력의 발산이다. 아울러 사유의 지평을 넓혀 보려는 발버둥이다. 이러한 시간 세계를 바라봄은 역설적으로 시간을 의식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이상을 품는 책임으로 전환된다. 이를 느끼는 자만이 시간을 버리는 냉정함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한 냉정함을 쟁취하는 길이 벗어남의 속성이다. 게다가 나를 되돌아오게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는 시간의 영구성을 버리는 자연의 속성을 알아가는 학습에 달려 있다. 또한 우리에게 학습된 시간 감옥에서 탈출을 예고한다.
여기서 갈망하고 궁극적으로 알고 싶은 것이 있다. 나를 인식함으로써 내가 되는 책임이다. 그것은 나를 데려오는 일이다. 이어서 나의 존재가 우주이며 삶이 되는 길이기도 하다. 게다가 살아 있음이 표현되는 공간이다. 이러한 사상의 단초는 삶을 상승시킨다. 나를 더 나은 조건으로 유도하기 위한 본능적 추구이다. 또한 내가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절대적 사실을 인식하는 과정이다. 이로써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기초적인 질문의 형태로 표현된다. 이러한 것이 산다는 것에 대한 ‘책임 부여’라 할 것이다. 하지만 냉정한 우주적 감성이 동반돼야 한다. 지속적인 냉정함의 선(線)의 의미는 나아감이다. 나아감은 소멸하지 않는 실존의 가능성을 위한 표시다. 이는 다가옴의 가능성을 위한 열려 있음의 위로로 판명된다. 그 무엇보다 가능성을 배태(胚胎)하려는 용기에서 선의 의미는 드러난다. 선의 의미는 연장선을 추구하는 의지에 달려 있다. 전제조건이 있다면 시간 강박으로부터 해방이 우선이다.
그래서 벗어남의 수고로움은 타인으로부터 적대적(敵對的)이다. 그 이유는 저항을 시작으로 반항으로의 길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둔한 발상에 의한 경쟁의 장에서 벗어나려는 현실적 각성이다. 더불어 나에게로 향한 고유한 영역으로의 침투다. 이는 어느 곳에서나 두려운 존재에게 전할 수 있는 최고의 방어적 기질이다. 하지만 삶이 강해져야 할 조건이 따르는 수고로움이 있다. 실질적으로 삶의 강력함은 나누기 위한 발판이 된다. 그 이유는 강한 사람만이 나누는 마음을 얻기 때문이다. 여기서 강함이라 함은 본능과 이성의 높은 질이다. 우리의 본능은 철저한 자연적 본성으로 드러난다. 그다음 이성적 사고의 한계를 경험함으로써 자연적 본능의 우선을 따라야 함을 일깨운다. 이로써 사실적 삶에 대한 표현이 풍성해질 것이다. 이는 인간의 실존을 위한 알맞은 대응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우리는 궁극적 살아감의 최고봉을 향해 달려야 한다. 그것이 세상을 향한 우리의 사상적 우월에서 나온 맞서기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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