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칼럼

네오위버멘쉬를 위하여(5)

조석중 기자
조석중 경영학 박사
조석중 경영학 박사

우리의 실존(實存)은 이 순간이다. 즉 놀이하는 인간 속성을 아는 깨달음이다. 이를 바라보고 지나감을 탐색한다. 그리고 여기를 보며 다가옴을 기대한다. 그러나 냉정한 인간세계는 고통과 쾌락을 맛보게 하고 권태와 허무함을 선사한다. 이 또한 나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그 선물을 받아 내고 견뎌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주입된 제도, 관습, 대중, 트렌드, 미디어 등이 있다. 이에 따른 거대 담론의 영향은 우리에게 어떻게 작용하는가? 혹시, 나도 모르게 살아가는 ‘무의식적 따라감’이 있는 건 아닐까? 이러한 익숙한 공포! 공포는 어떻게 극복되는가? 보라! 지금을 살지 않으면 견디는 용기도 발휘되지 않는다. 인간은 살아야 하는 척박함에 노출되어 있다. 우리는 오늘 하루를 유쾌하게 또는 우울하게 견디고자 노력한다. 하루라는 척박함의 ‘온유한 가치’는 대중성에 도사라고 있는 흡수력이다. 이 순간의 흡수력은 안락함의 무의식적 따라감을 조장한다. 이는 휘몰아치는 대중적 광풍(狂風)으로부터 탈출을 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의지는 비틀기를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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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에서 탈출을 감행하는 자는 망각에서 깨어 있는 중이다. 자기 욕망이 살아 움직일 때 스스로를 느끼는 것이다. 존재가 나에게로 침투하는 시작이다. 내게로 다가오는 변화되는 존재의 경이로움. 이를 느끼는 수많은 난관에 의해 나로 거듭나는 계기가 마련된다. 하지만 시대가 요구하는 암묵적 강제력은 공포이다. 그것은 시간이다. 시간 없음-촉박한-은 날이 거듭될수록 우리를 거세게 구속한다. 이에 대해 우리의 의지는 약화되었다. 우리는 시간의 냉정함으로부터 정신적·육체적 감금 상태의 현실을 살고 있다.

지금이다! 시간의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생각의 연결 고리로부터 순환적 논리를 가져와야 한다. 이제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필요하다. 그 방법으로 우리는 살아감의 ‘찾아 나섬’을 말해야 한다. 이 세계를 해석하고 현상을 발견할 탐구가 절실하다. 아울러 거대한 흐름에서 독립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다행스럽게 ‘무의식적 따라감’에서 ‘의식적 벗어남’을 염두에 둔다면, 외로운 독립은 가능하다. 그 전제 조건은 세상에 대한 저항하는 정신으로부터 시작이다. 이는 나의 권력으로부터 생산된 저항력의 에너지다. 이러한 에너지의 방출은 대중의 광풍을 잠재우리라.

우리 관념에 지나감, 여기 있음, 다가옴이 있다.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현실적 흐름이다. 이에 대해 고찰(考察)해야 할 문제는 무얼까? 이를 통합하는 데 인류가 만들어 놓은 시간이라는 명제가 있다. 지나간 시간이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가? 두루 알다시피 시간의 강박성은 인간을 통합하고 일반화하는 데 일조 하였다. 현재 진행 중인 인류의 끝없는 발전과 진보의 욕망이 대변하고 있다. 이제 반동적으로 생각해 보자. 시간의 무의미성을 고찰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는 곧 시간을 사는 게 아니라 지금이라는 현실에 집중할 것이다.

나아가 현재 구속된 지점이 어디인지를 알아채는 순발력이 나온다. 이로써 지금이라는 명제 앞에 나를 던지는 계기가 된다. 이윽고 ‘나를 저항하는 자세’로서 있게 만든다. 그렇다면 시간을 지워야 한다. 그 시간을 지울 수 있는 사상은 어디로부터 나오는가? 지금까지 자연의 흐름을 시간으로 재단한 우리들이다. 자연은 인간의 일부가 아니다. 인간이 자연의 나약한 일부일 뿐이다. 하지만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는 역사를 만들었다. 여기서 우리의 새로운 각오(覺悟)를 새로 써야 한다. 그에 따른 조건을 말하자면, 자연을 인간이 욕망하는 도구가 아니라고 인식하는 자세이다. 그로부터 인간의 우월함은 소멸하는 것이다. 이것을 다듬어 당연한 자연적 귀결로 만들어야 한다. 또한 집단의식이 생산해 낸 모든 사상적·물질적 가공품으로부터 해방을 맛보아야 한다. 그럼으로써 600만 년의 인류역사가 다시금 자연과 동화되는 길이 열린다.

왜? 시간은 인간에게 ‘고통’일까? 인간은 지나간 시간과 현재를 포함해 미래를 내다보는 동물이다. 인간이 생각한다는 것은 그냥 무의식적 행동이 아니다.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알며 미래를 열려는 수고로움이 동반된다. 따라서 우려와 열망이 교차하는 지점을 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이 따른다. 엄밀히 말하자면 시간이 우리에게 다가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시간이 우리를 파괴하는 것이다. 여기서 시간을 망각하고 현재의 부족함을 인식하지 않는다는 가정이 있을까? 그러면 미래의 불안은 굳이 따져 볼 일은 아니지 않는가? 하지만 인간 본성상 ‘부지불식(不知不識)’ 간의 불만족에 대한 열망이 존재한다. 이것이 시간 인식의 악령이다. 즉 고통과 허무함을 감각한다. 그래서 시간의 강박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이어 서 강박이라는 족쇄는 우리를 자유롭게 놓아주지 않는다. 그 족쇄에서 벗어나고자 할수록 고통이 따른다. 시간성의 필연적 사유로 인해 인간은 기계로 전락했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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