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칼럼

네오위버멘쉬를 위하여(7)

조석중 기자
조석중 경영학 박사
조석중 경영학 박사

동물에게 자연환경은 아름다운 사색(思索)의 공간일까? 자연을 즐기는 동물이라! 아름다운 광경이다. 인간도 자연으로부터 나왔는데 이와 다를 바 없지 않나? 그렇다면 너의 심장으로 자연의 경이로움을 가져와라. 이는 너를 향한 권리이며 사랑스러운 책임이다. 그로부터 태양과 달의 움직임을 알라. 이로써 깨어 있기를 반복하는 대지의 역동성을 발견하리라. 이렇게 자연은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는 세계이다. 반면 인간에 의해 자연은 폭력과 연민이 공존하는 세상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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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욕망은 자연을 빚쟁이로 취급한다. 그리고 끊임없는 자연파괴와 욕구를 일삼는다. 우리가 알아야 할 건, 사람은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이다. 자연을 명령하고 지배해야 할 대상은 결코 아니다. 따라서 사람은 자연이 나타내는 경이로움에 머리 숙여야 한다. 이게 자연에게 사람이 해야 할 예우다. 그리고 당연히 자연 앞에 ‘여기 있음’으로만 존재해야 한다. 그래야 자연으로 향하는 나는, 나를 데려오는 고향을 찾게 된다. 이러한 발상은 당연히 자연으로부터 얻은 경이로움에 대한 배려다. 그로부터 나는 자연에서 어떠한 위치로 서 있는가?

이윽고 망각이라는 소화력은 무엇으로 작용하는가? 고요한 망각은 소화를 다한 잠재적 수면 상태의 작용으로도 나타난다. 사고력의 집중도는 완전한 망각 속에서 발견될 것이다. 그곳에서 우리의 영감(靈感)은 자라난다. 이와 같이 식물과 동물을 비롯한 우리들은 무의식 속에서 자라는 꿈나무와 같다. 유치한가? 아니다. 자연을 향한 단순하고 소박한 겸손이다. 그래서 자연으로의 결속은 새로운 사상을 잉태하고 있다. 이에 따라 나의 행동의 반응은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나뉜다.

자연에서 사람을 포함한 동물도 꿈을 꾸면서 살아간다. 그럼에도 시간의 무게를 의식하는 인간은 스스로 날아가는 새가 되기를 포기했다. 아는가? 시간은 자연에서 쓸모없는 개념이라는 것을 말이다. 따져 보면 자연과 교감할 때 시간은 소멸된다. 자연으로부터 파생된 존재는 자연의 일부라는 주장과 함께한다. 자연이 밝혀지는 현상은 생성 내지는 소멸의 반복뿐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살아감의 의지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의지로부터 생성은 소멸에 의해 나타나고 소멸은 생성을 약속하는 흐름의 일부다. 따라서 죽음이라는 필멸(必滅)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여기에 슬픔과 고통이 함께할 이유는 없다. 궁극적으로 죽음은 공포가 아니다. 강조하거니와, 시간 감옥과 상관없는 자연은 있는 그대로일 뿐이다. 당연히 인간은 자연의 작은 배역에 지나지 않는다. 그 안에서 우리의 삶과 죽음은 자연스러운 생성과 소멸의 일부임을 알아야 한다.

생각하는 인간은 과거, 현재, 미래를 인식한다. 동물과 달리 고통과 영광스러움이 교차하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를 통합하는 기술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사람은 지나감을 회상하고 여기 있음을 의식한다. 나아가 다가옴을 설계하는 능력을 발휘한다. 그 정점에 사상의 구조적 나열과 판단 능력의 통합을 가져온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기술적 행위다. 이러한 기술적 행위는 대중적 삶 속에서 얻기 힘들다. 또한 거부할 수 없는 대세적 담론 장에서 발견하기란 더 어렵다.

그곳에서는 누구나 이해 가능한 이론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이렇게 사실을 은폐하려는 의도는 우리에게 가면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거대한 시장에서 가면을 쓰면서 대중과 함께한다. 아울러 서로의 접근을 허용하고 서로 융화하려고 노력한다. 철저히 학습된 의식은 이러한 일반화된 담론 장에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이유를 따져 보면 인간의 굴레는 권력에 의한 포섭이 낳은 획일화와 함께한다. 또 엄격한 위계질서가 발휘되는 환경이다. 만약 그러한 환경에서 탈출을 시도한다면 대중으로부터 소외는 감수해야 한다. 우리는 잠시, 아니, 순간이라도 고독의 맛을 느껴야 한다. 즉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로부터 나온 생각의 깊이만큼 개별적 사상은 익어 간다. 그 후에 발견되는 사상의 지평은 구조적 관점으로 전환된다. 따라서 나의 사상의 지평(地平)은 고립을 감수하는 데서 확장된다. 아울러 구조적 관점을 갖는 능력은 이론적 학습의 결과로도 표현된다. 더불어 삶의 지혜는 경험에서 나오는 성찰과 바라봄이다. 그 결과 ‘벗어남’의 시도를 세상에 알리기에 이른다. 이윽고 나만의 고유한 사상적 지평은 정신적 혼란함을 다스린다. 다행스럽게도 다양성을 수용하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그 안에 흩어진 혼란스러운 그림자는 오롯이 나와 일치한다. 이어서 나를 데려오는 기쁨이 다가오리라. 궁극적으로 우리는 흔적을 남기는 유일한 동물로 거듭난다. 이것이 세상에 던져진 인간이 수행하는 본질적 활동의 책임이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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