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인에서 올해만 두차례 고속철 참사가 발생하면서 대형 사고가 되풀이되는 원인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스페인 당국은 신호 시스템 오류를 일차적 원인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유지보수 등 구조적 원인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28일(현지시간) 연합뉴스에 따르면 가디언, 로이터 등 외신들은 스페인 당국이 이번 사고의 표면적 원인으로 잘못된 신호를 지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 사고가 발생한 날 오전에는 철도 보안과 신호 체계에 전산 오작동이 발생했다.
그 때문에 수도 마드리드와 남부 안달루시아 구간에서 자동 시스템이 중단되고 열차들이 일제히 운행을 멈추고 선로에 정차하는 안전조치가 이뤄졌다.
초기 조사 결과에 따르면 그런 상황에서 중앙관제소가 난데없이 렌페 소속 열차에만 운행을 재개하라고 지시하면서 정차된 열차를 뒤에서 들이받았다.
오스카르 푸엔테 스페인 교통 장관은 이를 두고 교통관리자의 인간적 실수를 탓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았다.
그는 "우리 관점에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으로 관제센터에서 운행 재개 결정이 내려졌고 감속 권고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푸엔테 장관의 이런 발언에 대해 스페인 공무원 노조(CSIF)는 유체이탈식 태도가 아니냐고 나무라고 있다.
사고 원인 조사가 막 시작된 시점부터 장관이 정책 실패의 책임을 회피하고 교통관리자를 희생양으로 삼아 꼬리를 자르려고 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글로벌 미디어에서는 전형적인 후진국형 사고를 촉발한 이 같은 치명적 오류를 두고 더 근본적인 원인을 지목하는 시각도 있다.
영국 가디언은 지난 1월에 이어 이번에 발생한 사고도 모두 같은 노선, 동일한 철도 운영사가 관여돼있다고 지적했다.
두 사고 모두 마드리드와 안달루시아를 연결하는 노선에서 민영 철도회사 이리오 소속 열차와 국영 철도 렌페 AVE 열차가 충돌해 발생했다.
가디언은 이 구간이 스페인 고속철도 중 가장 노후화된 노선인 만큼 유지보수에 충분한 예산이 투입됐는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스페인이 철도를 민간에 개방한 이후 2019∼2024년 사이 열차 이용객 수는 40%나 증가했다.

그러나 로이터가 EU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고속철도망에 투입되는 예산은 연평균 약 15억유로(약 2조2400억원)로 최고 수준이지만 자금의 상당 부분은 새로운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쏠려있었다.
기존 시설의 유지보수에 투입되는 예산 비중은 16% 수준에 그쳐 독일이나 스위스 등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크게 뒤처진 것으로 조사됐다.
올해 상반기에만 2500만명이 이용할 만큼 고속철도망은 확장됐지만 인프라 유지보수는 이용객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스페인 철도 노조가 사고 전에 이미 철도 안전 대책 이행을 요구하며 파업을 예고했었다는 점도 주목받고 있다.
스페인 철도 노조는 지난 1월 사고 이후 안전 대책을 요구해왔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된 조치가 이행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29일 하루 고속철 렌페 운행을 멈추겠다고 예고했는데, 파업 돌입 하루 전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스페인 철도노조 호안 로드리게스 대변인은 국영 TVE 방송 인터뷰에서 민영화에 따른 교통량 증가가 철도 인프라에 추가적인 부담을 줬지만, 유지보수 문제와는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고 지적하며 "이 문제가 결정적 원인은 아니더라도 염두에 두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철도노조는 "우리 목표는 시스템을 바꾸고 더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안전 문제에 있어 실질적이고 확실한 해결책을 요구했다.
스페인은 약 4000km에 달하는 유럽 최대 고속철도망을 보유한 국가지만 최근 철도 사고 소식이 끊기지 않고 있다.
지난 1월 안달루시아 코르도바도 아다무스 인근에서 발생한 열차 충돌 사고로 46명이 숨졌고, 28일 사고로 인한 사망자도 68명에 달한다.
스페인에서 탈선과 충돌을 포함한 열차 사고는 2016년 45건에서 2024년 57건, 지난해 69건으로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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