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년에 두 번 교회에 간다. 결혼 전 교회에 나가자는 장모님의 물음에 한 해 두 번 예배에 참석하기로 한 장모님과의 약속 때문에 부활절과 성탄일에 예배에 참석한다. 종교는 믿음으로 선을 행하고, 사후에 천국 또는 극락(極樂)에 이르거나 부활을 믿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종교를 갖는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교회 예배에 참석할 때마다 정신이 맑아지기보다 오히려 혼란스러워진다. 설교 시간이나 기도 시간에 보면, 설교 내용이 특정 정치 집단의 생각을 간곡하게 표현하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예를 들어 제주 4·3 사건이나 10년이 지난 세월호와 최근 계엄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교하고 기도하지만, 근래 자주 일어나는 산불 사건이나 무안 항공기 참사, 또는 천안함 사건 등이나 대구 지하철 사건 등에서 유명을 달리한 사람을 위한 기도는 들어보지 못했다. 나라의 혼란 중에 일어난 같은 아픈 사건에도 너무 생각이 다르다. 같은 시기 6·25 때, 제주 4·3 사건으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람도 있지만, 제주 사건보다 인민군에게 무참히 죽은 우리 양민이 더 많고, 남쪽의 주요 인사를 북으로 끌고 가다 우물에 처넣거나 집단 총살한 사건도 많은데, 북한 인민군에게 불행을 당한 사람들이나 그 후손들에 대한 조사나 위로는 하지 않는다.
나의 교향마을은 국도변에 있었다. 그래서 6·25 때 아군이 인민군 남하 작전을 방해하려 폭파한 교량 복구를 위해, 인민군이 당시 동내의 모든 사람을 끌고 가 다리 공사에 부역에 참여하도록 했다. 국군이 한반도의 반을 수복했어도 당시 부역한 모든 주민은 인민군에 부역한 죄로 붉은 선이 그어져 자식까지 아무리 많이 공부해도 공직에 나가지 못했다. 누가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위로했나! 인민군에게 죽은 사람들은 재수 없어서 죽었고, 국군이나 경찰의 오인으로 죽은 사람들은 영웅인가? 남북은 같은 민족이지만 지도자의 서로 다른 생각으로, 죄 없는 일반 백성들만 그들의 정치야욕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건이 생기면 그들을 일상으로 돌아가도록 치유해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가슴 아픈 세월호로 자녀를 잃은 부모들은 아픔에서 일어나도록 회복을 도와주려 노력해야 할 것인데, 정치는 그들의 아픔을 10여 년이 넘도록 이용해 정치를 하고, 종교는 거기에 편승한다. 작년 계엄이 나쁘다면 계엄의 동기도 있다. 어떤 사람은 주변 인물이 수도 없이 죽어도, 그것은 죽은 사람 잘못이고, 음주 경력이나 사기 전과가 있고, 부인도 나랏돈을 쌈짓돈처럼, 사용했어도 능력이 있는 사람 취급을 받고 어떤 사람은 그랬다더라라는 소문만으로 나쁜 사람이 된다.
종교 지도자는 선(善)이나 인(仁)의(義) 덕(德)을 우선으로 말하고, 신도들을 이끌어야 하는데, 입만 선한 거짓 정치 선동가를 추종하는 설교를 하거나, 도덕적으로 타락한 정치인을 추종하면, 종교인의 탈을 쓴 선동가일 뿐이다. 정의사제구현단이라는 천주교 신부님들이 단 한 번도 특정 정치 집단의 잘못을 말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왜 그럴까? 한쪽 정당의 지도자가 신인가?
지금의 종교 지도자들의 생각이 정치 편향이 된 이유는 법원에도 있다. 어느 한쪽 정당의 재판은 무기한으로 늘어지게 하고, 판결도 많은 법조 전문가의 예상을 벗어난 판결을 하니, 사람들은 혼동하게 된다. 법이란 잘 지키면 모두가 편하게 살기 위해 존재한다. 누구한테는 그럴 수도 있다는 판결을 내리려면 왜 법복을 입고 있나? 법복이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판결을 내리면, 우리 후손의 미래는 명약관화하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 위에 법관이 있는 대한민국에서 법관을 믿지 못하면 어쩌란 말인가? 법과 종교는 제발 정치에서 눈을 돌려 선(善)과 의(義)만 생각해야 나라가 바로 서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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