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헤겔은 역사가 투쟁과 긴장을 통해 진보한다고 믿었다. 모든 명제에는 그것을 부정하는 안티테제(Antithesis·反)가 따르고, 이 모순이 부딪혀 더 높은 차원의 진리인 종합(合)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변증법의 위대한 장정이다. 그러나 21세기의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이 변증법은 멈춰 버렸다. 지금 우리의 정치는 ‘합’을 잃어버린 채, 영원히 끝나지 않는 ‘정(正)’과 ‘반(反)’의 소모적 교전 상태에 갇혀 있다.
정치적 사유의 본질은 토론을 통해 접점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진영 논리는 상대를 설득해야 할 ‘파트너’가 아니라, 철저히 파괴해야 할 ‘적’으로 규정한다. 여당의 주장(正)은 야당에게 무조건적인 악(反)이 되고, 야당의 반발(正)은 여당에게 국가를 흔드는 선동(反)이 된다. 이 대치의 구조 속에서 대화와 타협은 배신이 되고, 오직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만이 유일한 지상 과제가 된다.
문제는 이 지옥 같은 이분법의 링 위에서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이들이 바로 국민이라는 점이다.
헤겔의 진리대로라면 정과 반의 충돌은 반드시 더 나은 민생과 제도로 진화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실의 정치에서 도출되는 ‘합’은 어디에도 없다. 남는 것은 거친 단독 처리와 필리버스터의 메아리, 그리고 그 싸움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깊은 무력감과 피로뿐이다.
더 비극적인 것은, 이 소모적인 싸움판에서 양쪽 모두에게 쓴소리를 던지는 ‘중간자의 자리’가 설 곳을 잃는다는 데 있다. 어느 한쪽 편에 서서 확성기를 잡아주지 않는 이성적 비판은, 양극단의 진영 모두로부터 “적의 편”이라는 오해와 린치를 당하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이 불가능해 보이는 ‘합’을 외치는 일은 과연 부질없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일까? 변증법의 철학이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진실은, ‘합’은 저절로 주어지는 결말이 아니라 끊임없는 모순을 견뎌낸 자들만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윤리적 성취라는 사실이다. 비록 당장의 현실 정치는 ‘정’과 ‘반’의 갯벌 속에서 허우적거릴지라도, 그 소란스러운 환상 속에서 묵묵히 본질을 응시하는 것, 즉 “누가 주장하든 옳은 것은 옳다”는 상식을 지키려는 태도야말로 변증법이 말하는 진정한 사유의 생명력이다.
정치권은 여전히 싸우고, 중간에 선 자들의 목소리는 양쪽의 화살에 상처를 입을 것이다. 그러나 그 척박한 틈새에서조차 ‘합’이라는 지향점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역설적이게도 이 거친 이분법의 시대를 건너는 유일한 철학적 버팀목이자 국민을 진심으로 바라보는 정치적 양식(良識)을 지닌 이들의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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