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신문=이건구 기자] 12일 오후 3시40분께 눈이 내리는 양평 두물머리 인근 남한강 일대를 드론이 위에서 내려다본다. 강은 꽁꽁 얼어 있다. 얼음 위로 얇게 쌓인 눈은 물의 결을 지우고, 강을 하나의 커다란 흰 면으로 바꿔놓았다. 물은 더 이상 흐르지 않지만, 표면은 오히려 살아 있는 것처럼 무늬를 품고 있다.
두물머리 앞 외딴섬은 둥글게 자리 잡고 있고, 섬의 테두리를 따라 빛이 얇게 감돈다. 섬 바깥의 얼음 위에는 검은 조각들이 흩뿌려져 있다. 먹을 털어낸 듯 점들이 퍼지고, 큰 덩어리들이 군데군데 뭉쳐 있다. 어떤 곳은 지도처럼, 어떤 곳은 동물의 옆모습처럼 보인다.
검은 면이 길게 뻗어 꼬리를 끌고 가는 모양은 뛰어가다 한 번 뒤를 돌아보는 루돌프 사슴을 떠올리게도 한다. 이름을 붙이려는 쪽은 사람이고, 강은 그저 흔적을 남긴다.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면, 이번엔 선들이 보인다. 얼음 위로 길게 갈라진 균열이 나란히 뻗어 있다. 단정한 간격으로 이어진 선들은 어린 시절 본 밭고랑 같다. 누군가 쟁기로 쭉쭉 밀어놓은 것처럼, 겨울의 강이 한 줄 한 줄 결을 드러낸다. 눈발이 그 위로 떨어지며 선을 덮었다가 다시 드러내고, 드러냈다가 또 덮는다. 지워지는 과정까지 포함해, 지금 강은 계속 그려지고 있다.
드론이 멀어지면, 두물머리의 굽은 물길과 강 전체가 한 폭에 담긴다. 흰 면 위에 검은 점과 선, 그리고 회색의 얇은 번짐. 수묵화처럼 보이는 이유는 색이 적어서가 아니라, 여백이 많아서다. 그리고 그 여백은 눈이 내리는 동안 더 커진다. 조금만 더 내리면 병아리 같던 모양도, 루돌프를 닮았던 형상도 다시 평평해질 것이다.
이 풍경은 겨울 남한강에서만 잠깐 나타난다. 얼음이 단단해지고, 눈이 얇게 덮일 때, 강은 스스로 화폭이 된다. 이날 남한강은 누가 그렸는지 알 수 없는 그림을 펼쳐 보이며 조용히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눈은, 그 흔적을 다시 덮으러 내려온다. /글·사진=이건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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