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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끓는 물 폭력, 외국에 비친 한국의 부끄러운 얼굴

중앙신문 기자
[중앙신문 사설] 코로나 속 독감 유행 조짐 심상찮다. (CG=중앙신문)
[중앙신문 사설] 끓는 물 폭력, 외국에 비친 한국의 부끄러운 얼굴. (CG=중앙신문)

의정부의 한 아파트에서 벌어진 ‘끓는 물 폭력’은 개인의 일탈로 치부할 수 없는 사건이다. 낮잠을 자던 태국인 아내의 얼굴에 끓는 물을 붓는 잔혹한 범행도 충격적이지만, 이 사건이 한국 사회의 보호 체계가 아니라 태국인 지인의 SNS와 태국 현지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는 사실은 더 큰 부끄러움을 남긴다. 약자를 지키는 문제에서 우리는 또 한 번 외국의 시선을 통해서야 스스로를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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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이 유독 뼈아픈 이유는 새롭지 않기 때문이다. 국제결혼 가정에서 외국인 아내를 상대로 한 폭력은 오래전부터 반복돼 왔다. 2019년에는 한국인 남성이 베트남인 아내를 무차별 폭행하는 영상이 SNS를 통해 확산되며 국제적 공분을 샀다. 2000년대 초에는 지속적인 가정폭력을 피해 달아나다 숨진 필리핀 출신 아내의 사례도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서도 국제결혼 여성 다수가 신체적·심리적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문제는 이런 비극이 과거의 기록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 7월 제주도에서는 집을 나간 외국인 아내를 납치해 감금하고 폭행한 5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혀 구속 송치됐다. 지난해 11월에는 수원시에서 20대 남성이 외국 국적 아내와 가정사 문제로 다투다 폭력을 행사해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이혼 문제로 말다툼을 벌이다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외국인 아내를 폭행한 사건도 잇따랐다. 사건은 지역도, 연령도 다르지만 구조는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공통된 배경은 명확하다. 언어 장벽, 체류 자격, 경제력의 비대칭이 가정 안에서 권력 불균형으로 굳어졌다. 의심은 망상이 되고, 망상은 폭력으로 이어진다. 피해자는 신고를 망설이고, 제도는 늘 한 박자 늦는다. 가정폭력은 ‘집안일’로 축소되고, 외국인 피해자에게는 더 높은 문턱이 세워진다. 결국 보호의 손길은 경찰이나 복지 체계보다 SNS와 외국 언론을 통해 먼저 도착한다.

폭력을 문화 차이나 개인적 갈등으로 돌리는 해명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이는 명백한 형사 범죄이며, 동시에 국가의 공적 실패다. 국가가 결혼을 허용했다면 결혼 이후의 안전까지 책임져야 한다. 국제결혼을 개인의 선택이나 인구 대책으로만 다뤄온 사이, ‘지켜야 할 제도’는 허술하게 방치돼 왔다.

이제 방향은 분명하다. 국제결혼 가정에 대한 보호는 결혼 이후 단계에서 상시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언어·법률 접근성을 일상화하고, 체류 문제와 분리된 보호 원칙을 확립해 신고를 가로막는 두려움을 제거해야 한다. 가정폭력 대응 역시 사후 처벌에 머물 것이 아니라, 선제적 위험 관리로 전환돼야 한다. 폭력의 징후가 보이면 즉시 개입할 수 있는 지역 기반 안전망이 필요하다.

나라 망신은 숨긴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외국 언론의 보도로 드러난 끓는 물 사건은 우리 사회가 반복적으로 놓쳐온 책임을 다시 묻고 있다. 이제 묻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왜 외국에 알려졌느냐가 아니라, 왜 우리는 먼저 지키지 못했느냐고. 끓는 물은 식을 수 있어도, 무너진 신뢰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외국에 비친 이 부끄러운 얼굴을 바로잡는 길은 오직 하나다. 즉각적이고 단호한 보호로, 반복을 끝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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