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신문=김광섭 기자] 21일 오후 1시47분께 찾은 가평군 상면 덕현리 녹수계곡에선 시간이 멈춘 듯한 광경이 펼쳐졌다. 전날 새벽 쏟아진 극한 폭우에 계곡 일부는 완전히 뒤집혀 있었다. 도로를 이루던 아스콘은 계곡 한가운데 흩어져 있었고, 수십 년 된 나무 수천 그루는 뿌리째 뽑혀 돌덩이와 뒤섞인 채 물가에 쓰러져 있었다. 쓰러진 전신주도 하천가에 쓰러져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다. 폐허라는 말조차 약해 보일 만큼, 현장은 물과 흙에 의해 무자비하게 뒤엉켜 있었다.
가평군에 따르면, 이번 폭우로 21일 현재까지 가평에서 3명이 사망하고 4명이 실종된 것으로 집계됐다. 누적 강수량은 197.5㎜에 달했고, 조종면 일대는 새벽 시간당 76㎜의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가평 전역에서 30건이 넘는 구조 요청이 접수됐고, 산사태·침수·매몰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흙탕물이 아니라 진흙산”
녹수계곡 상류와 하류의 조가터교 인근도 사정은 마찬가지로 처참했다. 평소 잔잔하게 흐르던 맑은물 계곡은 시뻘건 진흙탕물로 변했고, 도로에 자국을 남긴 진흙 높이는 도로보다 2미터가량 높았다. 이 자국은 당시 물길이 얼마나 높았는지 반증하고 있었다. 물길이 끊긴 다리 위엔 부러진 나무와 대형 콘크리트 덩어리, 철근들이 엉켜 있었다.
현장에 있던 한 중장비 기사는 “이 정도라면 사람이 아니라 차도 그냥 휩쓸린다”며 “물이 아니라 땅이 밀려온 것 같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인근에는 물에 떠내려온 차량들이 뒤엉켜 있었고, 일부는 나무와 함께 하천 아래로 휩쓸려 내려갔다.
상류 대보교, 제방 넘은 물에 농가까지 초토화
녹수계곡보다 상류에 위치한 상면 대보교 일대도 상황은 같았다. 이곳은 새벽 폭우로 물이 제방을 넘는 월류 현상이 발생한 지점이다. 다리 위와 제방을 덮친 물살은 주변 농장과 주택, 농지까지 덮쳐 초토화시켰다. 인근 논 일부는 진흙과 자갈더미, 각종 쓰레기들로 뒤덮였고, 주택 마당엔 가전제품이 흙에 잠겨 있었으며 창문은 부러진 나뭇가지들로 막혀 있었다.
한 주민은 “한순간에 삶이 전부 무너진 것 같다”며 허공을 바라보며 한숨만 내쉬었다.
실종자 수색과 복구, 동시에 이어져
상면 녹수계곡 일대와 조종면 하천 일대에는 경찰과 소방은 물론 경찰특공대와 탐지견이 대거 투입됐다. 수색팀은 구역을 나눠 실종자를 찾고 있었고, 조종면 하천에는 드론과 보트가 동원돼 접근이 어려운 지역을 수색했다. 상공에선 경찰·소방 헬기가 수시로 순찰 비행을 이어가고 있었다.
녹수계곡 복구 현장에는 굉음을 내며 중장비와 덤프트럭이 끊임없이 드나들고 있었다. 도로 위를 지나가는 복구 차량 바퀴에서는 흙먼지가 자욱이 피어올랐고, 그 차량들이 달리는 그 길은 불과 하루 전 새벽, 거센 물살이 삶을 삼켰던 자리였다.
복구 인력들은 무너진 도로 옆에 실어온 흙을 쏟아부으며 원래 도로의 형태를 되살리고 있었고, 범람 재발을 막기 위한 임시 둑도 급히 설치하고 있었다.
한 중장비 기사는 “지금은 수색과 복구를 동시에 할 수밖에 없다. 더 이상 실종자가 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물은 지나갔지만, 삶은 아직 멈춰 있다
기자는 오후 2시, 유원지 입구 한쪽에서 젖은 신발 한 켤레와 옷가지 몇 점을 보았다. 그 옆엔 찢긴 텐트 조각과 뒤집힌 보냉 박스, 그리고 흙탕물 자국만이 남아 있었다. 그 물건들의 주인은 어디쯤일까. 찾고 있을까. 아니면 누군가가 그를 기다리고 있을까. 이제 물은 빠졌지만, 삶의 자리는 여전히 흙 속에 파묻혀 있었다. 여긴, 한때 사람들이 살고, 웃고, 쉬던 곳이었다.
포천지역도 피해 잇따라…경기북부도 ‘물폭탄’
이번 폭우는 가평에만 그치지 않았다. 포천에서는 산비탈이 무너지며 야영장이 매몰되고, 하천이 범람해 도로와 주택 수십 채가 침수됐다. 연천·양주 등 경기북부 곳곳에서도 토사 유출과 피해가 발생했다. 21일 기준 경기북부 전체 사망자는 4명, 실종자는 4명으로 집계됐다. 경기도북부소방재난본부는 총 200여 명의 인력과 50여 대의 장비를 동원해 인명 수색과 응급복구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