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㉟ 학익동(HID) 인천의 대표적인 집창촌지역
또 ‘HID’ 는 학익동의 영문자 이니셜로 만들어졌지만 당시 중구 신흥동에 있던 육군 첩보부대의 명칭을 사용한 은어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 학익동은 문학산의 한 줄기인 학익산 아랫동네다 .
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㉝ 한적한 포구가 개항의 중심지로 떠오른 ‘제물포’
이곳은 신흥동 집에서 1 시간 정도 걸어오는 거리로 봄철에는 미꾸라지 , 여름에는 메뚜기 , 가을에는 배 ( 과일 ) 서리 등을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놀이 명소였다 . 숭의동과 제물포 사이에 위치한 인천남중학교는 필자가 다니던 학교였다 .
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㉜ 인천 최초의 문화주택 단지 숭의동
당시 신흥동에 살던 필자 ( 초등학생 ) 는 낙섬 ( 현 ‧ 금호아파트 ) 으로 망둥이 낚시를 갈 때 집창촌 한가운데 길을 질러가며 누님들을 대했다 . 양공주라 불리던 이곳 누님들에게는 이곳이 천당과 지옥을 가르는 삼정목이기도 했다 .
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⑱ 답동성당
특히 , 이들은 답동과 신흥동 일대에서 강도를 비롯한 좀 도둑들이 설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 답동사거리 시계탑.
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⑯ 신흥동 국내 최초 '사이다 공장'
남용우 선임기자 신흥동 ( 新興洞 ) 은 구한말 인천부 다소면 선창리의 일부로 인천항 개항 이후에 생긴 마을이다 .
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⑬ 수인선 협궤열차
지금의 중구 신흥동에 옹기종기 모여 성업을 이루고 있는 기름집들도 수인선 영향으로 형성되었다 . 구 옹진군청에서 제일제당을 지나 철로 변 못 미쳐 공터가 지난 날 수인역의 현주소다 . 소래철교.
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⑧긴담모퉁이
이곳은 원래 신흥동과 경동 사이에 솟아있는 야트막한 구릉지였다 . 현재 송도중학교가 자리 잡고 있는 신흥동과의 경계지 일대에는 1900 년대 초반까지 인가가 거의 없는 대신 , 일본인들의 묘지와 절이 있었다 .
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➆ 월미도
필자도 초등학교 시절 여름철 동네 형들을 따라 중구 신흥동 집에서 하인천 부두를 지나 월미도 해수욕장으로 수영을 다녔다 . 그때는 월미도에서 수영으로 등대까지 건너갔다 오는 것을 자랑으로 삼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