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쓰레기 매립지가 있는 경서동(景西洞)의 원래 이름은 ‘쑥데이 고잔’이다. 구한말 부평군 모월곶면 고잔리에 속했던 땅으로 고잔은 곶에서 생긴 말이다. 그런데 이곳은 인천에 있던 여러 곳의 고잔 중에서도 약으로 쓰던 쑥이 유명했고, 고려시대에 쑥의 무역항으로 이름을 떨쳤기 때문에 ‘쑥데이 고잔’이라 불렸다고 한다.
이곳에서 나오는 쑥은 인근지역 장터에서도 활발하게 거래됐다는데, 지금은 매립사업으로 땅 모양이 바뀌었고 세월이 흐르면서 동네 사정도 너무 달라져 옛 자취를 더듬어보기는 어렵게 됐다. 특히 1968년 이후 이 지역의 율도와 이도, 묘도에 대규모 간척사업이 벌어져 3천여만㎡에 이르는 바다와 섬들이 육지로 변해버렸다.
1970년대 중동지역 건설 침체로 시련을 겪던 동아건설이 놀고 있는 중장비를 활용하기 위해 정부로부터 1980년 동아매립지 공유수면 매립허가를 받았다. 동아건설이 서구 원창동, 경서동, 연희동 일대 3370만여㎡의 공유수면을 농경지 조성목적으로 매립면허를 받아 시행에 들어갔다. 그러나 1984년 서울 난지도 매립장의 용량이 포화상태에 이르러 쓰레기 매립에 비상이 걸렸다. 환경처는 난지도 매립지의 대처방안으로 동아매립지 전체 매립면적의 55.7%에 달하는 1883만여㎡를 매입, 현재의 수도권매립지가 탄생했다.
이와 함께 인천시는 각 지역에 산재해 있던 주물공단이 공해를 배출하고 도시환경을 저해하는 등 각종 피해를 유발하고 있어 이를 한 곳으로 모아 관리하기로 했다. 인천시는 경서동에 주물공단을 설립해 각 지역에 산재하던 주물공장들을 이곳에 입주시켰다. 특히 경서동에는 각종 산업폐기물처리 업체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이 몰려있다. 지역이 외진 데다 교통편이 불편해 단속의 손길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렇듯 주물공단을 비롯해 수도권매립지, 폐기물처리 업체 등이 몰려있는 이 지역이 자유경제지역으로 지정돼 대단지 고층아파트가 들어서며 별천지 세상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경서동에 속해있는 청라도의 경우, 한자의 뜻으로 보면 ‘푸른 이끼 섬’ 또는 ‘푸른 쑥 섬’으로 해석되니 ‘쑥데이 고잔’이란 이 동네 이름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경서동은 1946년 1월에 새로 지어 붙인 이름이다. 이곳이 계양산에 있는 징맹이 고개, 곧 경명헌의 서쪽에 있다는 뜻이다. 이에 앞서 일제강점기인 1940년 이곳은 인천부에 편입되면서 일본식으로 이가정이라는 이름을 가진 적이 있다. 당시 섬이었던 이곳의 땅 모두가 이씨 왕실의 소유였기 때문이었다.
경서동에는 국내 지정문화재 사적 제211호인 ‘녹청자도요지’가 있다. 현재 인천 국제컨트리클럽 안에 있는 이곳은 고려시대 중기부터 조선 초기까지 청자를 구워냈던 곳이다. 그런데 1965년~1966년 4차례에 걸친 발굴조사에서 도요지 안의 구조가 이전까지 일본에서만 발견됐던 양식을 갖고 있음이 밝혀졌다. 우리 도자기가 일본으로 전달된 과정을 밝히는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문화재다.
또 경서동에 있는 남지도는 옛날 영약으로 치던 난지초가 자생하던 곳이어서 붙은 이름으로 전해온다. 하지만 약효가 소문이 나면서 너도나도 와서 이 풀을 캐내가는 바람에 지금은 완전히 멸종된 상태이다.
서울 마포에도 한동안 쓰레기 처리장으로 쓰였던 똑같은 한자 이름의 난지도가 있다. 이곳은 원래 풀과 잡초만 무성한 불모지여서 난지도라 불리다가 ‘어지러울 란(亂)’대신 뜻이 좋은 ‘난초 란(蘭)’을 써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연구자에 따라서는 이곳이나 서울의 난지도나 두 곳 모두 영지(芝) 자가 아니라 어수리 지(芷) 자를 써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어수리는 산이나 들에서 자라는 미나리과의 다년생 풀이다. 그러나 이들 섬에 이 같은 풀이나 식물들이 얼마나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니 섬 이름을 전혀 다른 차원에서 해석해 볼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 땅이름에서 ‘갈지자’는 그 글자의 모양처럼 ‘물이 이리저리 돌아 흐르는 곳’에 붙곤 했는데, 때로는 같은 뜻이면서도 좀 더 멋져 보이는 ‘영지자’를 끌어다 쓰기도 했다. 이곳도 섬에 바닷물이 돌아 흘렀기에 처음에‘갈지자’를 써서 만든 어떤 한자 이름이 있었는데, 그 이름의 ‘지’ 자가 시간이 가면서 ‘영지자’로 바뀌고, 거기에 이름을 조금 더 좋게 만들려는 뜻에서‘난초 란’ 자를 덧붙여 지금의 이름이 됐으리라 생각해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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