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자수첩

[기자수첩] 멈춘 예산, 결정하지 못한 의회

김종대 기자
김종대(남부권 본부장)
김종대(남부권 본부장)

오전 10시께 회의는 멈췄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실에서 내려진 정회 선언은 짧았지만, 그 여파는 길었다. 밤 9시를 넘겨 다시 열린 회의에서도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정례회는 그대로 문을 닫았다. 안성시의 2026년도 예산은 그렇게 숫자도, 방향도 정해지지 않은 채 남았다. 형식적으로 보면 예산안은 논의됐다. 계수조정 직전까지 갔고, 각 항목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었다. 그러나 논의는 결정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수정안도, 의결도 없었다. 의회는 예산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이전에, 어떤 결론도 내리지 못한 채 회기를 끝냈다. 그 결과 약 1조2000억원 규모의 예산안 전체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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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의 시작은 지난 17일 오전 10시께였다. 안성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그날 계수조정을 앞두고 회의를 정회했다. 회의는 같은 날 오후 9시를 넘겨 다시 열렸지만, 이견은 좁혀지지 않았다. 예산안은 보류됐고, 다음 날 열린 본회의에서도 추가 논의 없이 정례회는 종료됐다. 국민의힘은 졸속으로 편성된 예산을 바로잡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민주당은 절차를 통해 고칠 수 있는 문제를 스스로 내려놓은 책임 회피라고 반박한다. 여야의 말은 팽팽히 맞서지만, 이 공방을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공통점이 보인다. 어느 쪽도 “그래서 우리는 어떤 결정을 내리려 했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

예산을 멈추는 것은 의회의 권한이다. 그러나 그 권한은 결과와 함께 행사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예산이 문제라면 고쳐야 하고, 고칠 수 없다면 왜 고치지 못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수정이든, 의결이든, 회기 연장이든 선택지는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선택지들이 실제로 작동하지 않았다. 의회는 문제를 제기했지만, 문제를 정리하는 단계로는 나아가지 못했다. 더 우려스러운 대목은 이 장면이 낯설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해에도 예산은 연내 처리되지 못했다. 올해도 같은 결말이다. 연말이 되면 예산은 늘 막판에 몰리고, 갈등은 마지막 회기에 폭발한다. 그리고 “불가피했다”는 설명이 반복된다. 반복되는 불가피함은 우연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예산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행정의 시간이고, 시민과의 약속이다. 예산이 확정되지 않으면 행정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어렵다. 신규 사업은 출발선을 넘지 못하고, 기존 정책도 속도를 잃는다. 준예산이라는 말이 거론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위협이 아니라, 결정을 미뤘을 때 따라오는 제도적 결과다. 의회의 역할은 비판에서 끝나지 않는다. 비판 다음에는 결정이 있어야 하고, 결정 다음에는 책임이 따라야 한다. 이번 예산 파행에서 시민이 확인한 것은 치열한 공방이었지만, 그 공방이 어떤 결론으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의회가 멈춰 세운 것은 예산안만이 아니다. 시민이 의회를 신뢰할 수 있는 근거 역시 함께 흔들렸다. 권한은 행사됐지만, 그 권한이 어떤 책임으로 귀결되는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이번 사태가 또 하나의 연말 풍경으로 지나간다면, 내년 이맘때 우리는 다시 같은 질문을 하게 될지 모른다. 의회는 예산을 심의했는가, 아니면 책임을 유예했는가. 그 차이는 결국 결과로 남는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언제나 시민의 시간 위에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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