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10조 기반 중고차 수출, 단단히 꾸린다
인천항의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져온 만큼 , 이제는 행정과 현장이 함께 움직여 산업의 체질을 다시 세우겠다는 의지가 실천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 인천항은 수도권과 바로 맞닿아 있는 대표 관문 항이다 . 그 의미는 단순한 물류 거점 이상의 것이다 .
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53) 가좌동, 경인고속도로 출발지인 가장자리마을
이어 1969년 7월 20일 가좌동~인천항 앞까지 나머지 구간도 뚫려 전체 길이 29.5km 왕복 4차선으로 만들어졌다.
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㊿ 청학동 청담·청학풀장으로 유명세 떨쳐
한편 청학동에는 인천항의 개항 이후 인천에서 활동했던 외국인들의 묘지가 묻혀 있었다. 이는 원래 중구 북성동, 답동 등지에 흩어져 있던 것을 1962년에 옮겨온 것이다.
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㊻ 시민들의 유일한 휴식처 인천대공원
특히 인천에서 3년 동안 감옥 생활을 하며, 인천항 축항공사에도 끌려 다녔던 백범 김구 선생의 동상도 이곳에 서 있다. 이 같은 편의시설을 갖춘 대공원은 연간 5백만 명이 방문하는 인천 최고의 휴식처로 자리매김하며 시민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㊴ 80년대 인천최대의 중심지로 탈바꿈 간석동
일제 때 인천항을 중심으로 인천을 대표하던 주먹이 6.25 전쟁 후 미야마찌 ( 신포동 ) 와 화평동 ( 옛 인천극장 ) 으로 자리를 옮겼다 , 그리고 1970 년대 동인천역을 중심으로 제물포 , 주안 , 십정동 , 부평 등 각 지역에서 새로운 주먹들이 태어났다 .
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㊳ 물텀벙이의 대명사 용현사거리 용현동
지금 용현동의 상당 부분이 인천항 개항 뒤에 바다를 매립해 생긴 땅인데, 옛날 이 앞바다에서 ‘장마 때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어 비룡마을로 불렸다고 전해진다.
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㉝ 한적한 포구가 개항의 중심지로 떠오른 ‘제물포’
원래 인천항 쪽에 있던 제물포와 문학 · 관교동 일대에 있던 인천도호부의 위치를 따져볼 때 지금의 경인전철 인천역이 제물포역이 되고 제물포역은 인천 역으로 불러야 한다는 것이 향토학자들의 주장이다 .
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㉜ 인천 최초의 문화주택 단지 숭의동
외국 선적들이 인천항에 몰려오며 이곳 집창촌은 전성기를 맞는데 한때 이곳에 있는 여자들을 양공주라고 불렀다 .
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㉛ 화도진 고종 16년에 설치한 군사기지
당시 배는 인천항에 정박했을 테니 거기 보이는 반대 방향 어느 지점의 천막은 지형으로 보아도 지금의 화도진이 될 수가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당시 정황상 ‘천막설’은 근거가 부족할뿐더러 설득력이 떨어진다.
[사설] 중국 관광객 차분한 맞이가 우선이다
반쪽운영에 그친 국제여객터미널 기능을 회복시켜 이용객들의 불편을 줄이고 인천항을 국제적 해양관광 허브로 거듭나게 한다는 방침이다 .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들뜨기보다는 차분한 준비와 손님맞이가 우선이다 . 보다 치밀한 대처가 선행되어야 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