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㊵ 인적이 드물던 산골마을 남동
내년 1월이면 30주년을 맞이하는 남동구청이 새롭게 청사진을 펼친 것이다.
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㉝ 한적한 포구가 개항의 중심지로 떠오른 ‘제물포’
그 이유에 대해서 철도청도 근거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뚜렷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
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㉛ 화도진 고종 16년에 설치한 군사기지
(사진제공=동구청) 조선이 미국과 1882년(고종 19년) 5월22일 화도진에서 통상조약을 맺은데 이어 1883년 독일, 1984년 영국과의 통상조약도 이곳에서 맺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㉚ 화평동 인천의 대표식품 냉면집 골목
(사진제공= 동구청) 그 뒤 가도는 정부로부터 받은 보상금으로 화평동에 전당포를 차려 놓고, 한국인을 상대로 고리대금업을 했다.
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㉙ 바닷물 넘실대던 곳마을 화수동
(사진제공=동구청) 유독 서울 손님이 많이 찾는 이곳 식당은 장맛으로 유명하다 . 4~5 년 넘게 숙성시킨 된장 맛은 이곳을 찾는 손님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발길을 이어주고 있다 .
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㉘ 우각리(쇠뿔고개)
배다리와 동구청 사이에 자리를 잡은 이 헌책방 골목은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거리에 리어카와 노점상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형성됐다.
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㉗ ‘인천의 성냥공장 아가씨’
(사진제공=동구청) 1917년 인천부 금곡리(현재의 금곡동 33번지 일대) 6천여㎡에 조선인촌(성냥) 주식회사가 들어서 연간 7만여 상자의 성냥을 생산했다.
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㉖ ‘양키시장’ 야전잠바 등 미제구호물자 최고인기
(사진제공=동구청) 1946년 12월 8·15 광복 전의 인천일용품시장을 중심으로 소성자유시장 자치회를 조직해 노점의 규합을 시도했다.
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㉕ ‘수문통’ 화수동에서 배다리까지 이어진 갯골
(사진제공=동구청) 수문통 일대에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살기 시작한 것은 1900년대 초로 알려졌다.
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㉔ 피난민의 정착지 ‘괭이부리’
(사진제공=동구청) 공동화장실이 생긴 것은 훨씬 세월이 지난 후의 일이지만, 그나마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아침마다 화장실 앞에 길게 늘어서 순번을 기다렸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