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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재·안성기 이어 최불암 별세…'국민배우' 시대 저문다

김현정 기자

무대·TV·영화 호령한 배우들, 1년새 잇달아 별세

대중적 사랑 한몸에 받았던 거물들 시대 저물어

국민배우 최불암 @ 연합뉴스

'이순재, 안성기, 최불암.'

'국민배우'로 불렸던 거목들이 최근 1년간 잇달아 별세했다. 대중의 폭넓은 사랑을 받았던 이들이 주도적으로 이끌어온 한국 대중문화의 한 시대도 저물고 있다.

이순재는 TV와 연극을, 안성기는 영화를, 최불암은 안방극장을 대표하는 국민 배우였다. 이순재는 70년 가까이 연기했고, 안성기는 69년간 영화를 지켰다. 최불암도 1959년부터 67년의 연기 인생을 보냈다.

최불암은 29일 향년 87세로 세상을 떠났다. 1959년 극단 '실험극회'의 연극 '햄릿'으로 데뷔한 고인은 1967년 서울중앙방송(현 KBS) 6기 탤런트로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최불암은 18년간 방송된 MBC '수사반장'(1971~1984, 1985~1989), 국내 최장수 드라마 MBC '전원일기'(1980~2002), MBC '그대 그리고 나'(1997~1998) 등으로 전국적 인기를 끌며 국민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수사반장’은 시청률 70%라는 대기록을 세웠는데 이 작품에서 고인은 박영한 반장 역을 맡아 극을 이끌었다.

‘전원일기’는 무려 22년 간 방영되면서 국내 최장수 드라마로 꼽히고 있다. 고인은 극의 중심을 잡는 양촌리 김 회장을 맡아 좋은 어른, 좋은 아버지의 표상이 됐다.

소탈한 이미지를 앞세워 시사교양 프로그램 진행자로도 오래 활약했다. 1999년부터 2008년까지 시사 고발 프로그램인 KBS '좋은나라 운동본부'를 진행했고,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는 '한국인의 밥상'에 출연했다.

국민 아버지 이순재 @ 연합뉴스

이순재는 지난해 11월 25일 향년 91세로 세상을 떠났다.

1956년 연극으로 출발해 약 70년간 무대와 TV, 영화를 오간 ‘영원한 현역’이었다.

‘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 아버지부터 ‘허준’의 유의태, ‘거침없이 하이킥’의 ‘야동 순재’까지 세대마다 그를 기억하는 캐릭터가 달랐다. 9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연극 무대를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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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KBS2 ‘개소리’로 연기대상까지 품으며 마지막 순간까지 배우로 남았다.

이순재는 1956년 유진 오닐의 희곡 '지평선 너머'를 상연한 연극에 출연하며 연기자로 데뷔했다. 이후 70년 가까이 무대와 TV, 스크린을 오가며 현역으로 활동했다.

이순재는 1961년 KBS 개국드라마 '나도 인간이 되련다'에 출연하고 1964년 동양방송 공채 1기로 입사하면서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이순재는 국내 최초 일일 연속극 '눈이 나리는데'(1964), 최초 TV 수사극 '형사수첩'(1965~1966) 등 초창기 방송계의 역사를 함께 썼다. 이후에도 MBC 주말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1991년)와 사극 '허준'(1999), '상도'(2001), '이산'(2007),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2006~2007) 등 다양한 연기를 보여줬다.

이순재는 '초연'(1966)으로 스크린에 데뷔한 뒤 영화계로도 활동 영역을 넓혔다. 주인공 허준 역을 맡은 '집념'(1976)을 통해 제13회 백상예술대상 최우수 남자연기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말년에 그의 뿌리였던 연극 무대에서 열정을 불태웠다. 2022년 안톤 체호프 '갈매기'의 연출을 맡았고, 2023년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서 리어왕을 연기했다. 2024년에도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의 에스터를 한 달가량 연기했다.

국민배우 안성기 @ 연합뉴스

안성기는 올해 1월 6일 향년 74세로 별세했다. 안성기는 평생 18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국민배우 이름을 남긴 한국영화의 전설이다.

2019년부터 혈액암으로 투병하면서도 복귀 의지를 놓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말 자택에서 쓰러진 뒤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고 올해 1월 세상을 떠났다.

1957년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황혼열차'로 다섯 살에 데뷔한 그는 아역 출연작만 70편이 넘는다. '10대의 반항'(1959)으로 제4회 샌프란시스코영화제 아역상을 수상하며 해외 영화제에서 연기상을 받은 첫 한국 배우로 기록했다.

1977년 '병사와 아가씨들'로 성인 배우 활동을 시작했고, 대종상 남자신인상 수상작 '바람 불어 좋은 날'(1980)을 시작으로 1980, 90년대 한국영화사에 '안성기 시대'를 열었다. '고래사냥'(1984), '깊고 푸른 밤'(1985),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투캅스'(1993),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등 많은 흥행작을 남겼다. 2000년대 들어서도 '실미도'(2003), '라디오 스타'(2006) 등 작품으로 관객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안성기는 평생 연기자 외길 인생을 걸었다. 1990년대 한국영화의 수익구조 개선을 위해 박중훈과 함께 자진해서 출연료를 낮췄고, 2006년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는 등 한국 영화를 위한 활동에도 적극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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