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7일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일본 작가 무라카미 류는 일본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영화감독이다.
일본 신세대의 저항 정신과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상징하는 작가이자 무라카미 하루키와 함께 일본 대중문화를 이끈 '투(Two) 무라카미'로 불린다.
그의 작품은 얼핏 풍요롭고 평화로워 보이는 일본 사회의 부조리한 이면을 해부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의 본명은 무라카미 류노스케로, 1952년 일본 나가사키현 사세보시에서 태어났다.
사세보는 2차대전 이후 미국 제7함대(태평양 함대)의 주요 기항지였다.
미군 기지 주변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록 음악, 영화, 마약, 성적 콘텐츠 등 미국 문화를 접하며 살았다.
이런 성장 배경은 그의 작품 세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무라카미 류는 청춘의 일탈, 폭력, 섹스, 마약, 소외, 고독과 상실 등 파격적인 소재를 통해 일본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적나라하게 그려냈다.
고교 시절에는 록밴드를 결성해 드럼을 연주하고, 8㎜ 단편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한때 학생 운동에도 발을 담갔다. '68혁명'이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던 1969년에는 학교 옥상을 바리케이드로 봉쇄하고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이 일로 무기정학을 당했는데, 이때의 경험을 살려 쓴 소설이 '식스티 나인'(sixty nine)이다.
그는 이후 삼수 끝에 무사시노미술대학에 진학했으나 중퇴했다.
재학 중이던 1976년 스물넷의 나이에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를 발표하며 데뷔했다. 미군 기지 주변에서 마약과 섹스, 폭력에 잠식돼 가는 젊은이들을 다룬 문제작이었다.
이 작품으로 군조신인상과 아쿠타가와상을 동시에 받았다.
이 책은 당시 국내에도 번역·출간됐으나 '미풍양속을 해치는 외설물'이란 이유로 판매 금지당하기도 했다.
그는 초기 작품에서 개인의 내면과 자의식에 집중했으나, 점차 체제와 사회의 모순 등으로 관심을 넓혔으며, 미래 사회를 충격적으로 묘사한 작품을 내놓기도 했다.
코인로커에 버려진 아이들이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타락한 세상을 파괴한다는 '코인로커 베이비스', 휴거 바이러스가 인류에게 최후의 심판을 내린다는 '바이러스 전쟁', 미국·소련·중국·영국에 의해 4개로 분할돼 지배받는 가상의 일본을 그린 '오분 후의 세계' 등이 대표적이다.
'코인로커 베이비스'로는 1982년 노마 문예신인상을 받았다.
무라카미 류는 문학 외 여러 문화 분야에서 전방위적으로 활약했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와 '교코' 등 다섯 편의 영화를 찍은 감독이기도 하다. 쿠바 음악을 전파한 공로로 쿠바정부로부터 문화훈장을 받았으며, 방송 진행자, 축구 해설가, 사진작가 등으로 활동했다.
특히 한국의 4050세대에게도 무라카미 류는 각별한 이름이다.
1990년대 일본 문화가 개방되면서 무라카미 류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함께 큰 인기를 끌었다.
무엇보다 무라카미 류를 기억하는 국내 팬들에게 그의 이름은 '청춘'이란 단어로 기억될 것이다.
'식스티 나인'에 남긴 '작가의 말'에서 무라카미 류는 이렇게 말한다.
"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이다. 나는 고교시절 나에게 상처를 준 선생들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중략) 유일한 복수 방법은 그들보다 즐겁게 사는 것이다. (중략) 지겨운 사람들에게 나의 웃음소리를 들려 주기 위한 그 싸움을 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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