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건물과 도로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도시를 진정한 도시답게 만드는 것은,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계(關係)와 신뢰(信賴), 그리고 서로(相)의 문제(問題)를 함께 해결(解決)하려는 힘이다.
나는 공동체(共同體)를 단순히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단(集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공동의 가치 실현을 위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함께 살아가며, 서로 협력하고 문제를 해결해 가는 관계의 조직(組織)이라고 본다.
특히 공동체의 핵심에는 신뢰와 협력, 소속감, 공유와 나눔, 상생과 지속 가능성, 참여와 민주성이 자리한다. 그렇다면 구리시의 공동체 정책도 이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얼마나 많은 공동체에 예산을 지원했는가”가 아니라 “공동체가 우리 동네의 어떤 문제를 해결했는가”를 물어야 한다. 나는 이것이 앞으로 구리시 공동체 정책(政策)이 가야 할 방향(方向)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공동체를 ‘행사(行事)’가 아니라 ‘지역문제 해결의 주체(主體)’로 바라봐야 한다.
구리시에는 이미 마을공동체를 지원하는 제도가 있다. 현재 구리시는 주민이 주체가 되어 이웃과 소통하고, 마을의 공동 문제와 사회적 의제를 발굴·해결하도록 지원하는 마을공동체 주민제안 공모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2026년 사업의 지원대상도 5명 이상의 주민모임 및 단체로 정해져 있다.
또한, 구리시 공동체 사회적경제지원센터는 공동체 활동 경험에 따라 1단계·2단계·3단계로 구분하여 지원하고 있으며, 공동체 활동공간을 조성하는 사업도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는 매우 중요한 출발점이다.
그러나 이제 질문을 바꿀 필요가 있다. “공동체가 몇 개 만들어졌는가?”에서 “공동체가 무엇을 변화시켰는가?”로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공동체가 주민들끼리 친목을 도모하는 것만으로 끝난다면 정책적 효과는 제한적이다.
반면, 골목의 쓰레기 문제를 주민들이 해결하고, 혼자 사는 어르신의 고립 문제를 이웃이 함께 돌보고, 아이들의 돌봄 공백을 주민들이 함께 해결하고, 빈 공간을 주민공유공간으로 활용하고, 지역 상권과 주민이 함께 지역경제를 살리고, 청년과 어르신이 서로의 경험과 역량을 나누는 것이라면 공동체는 단순한 친목 모임을 넘어 도시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 인프라가 된다.
경기도 역시 마을공동체를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바탕으로 지역의 다양한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공동체로 육성하고 있다. 따라서 구리시도 공동체 사업의 평가 기준을 참여 인원이나 행사 횟수 중심에서 문제 해결의 성과 중심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둘째, ‘주민제안(住民提案)’을 구리시 공동체 정책의 핵심 엔진으로 만들어야 한다.
공동체 활성화의 출발점은 행정이 정해준 사업에 주민이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 주민 스스로 “우리 동네에 이런 문제가 있다”고 발견하고, “이렇게 해결해 보자”고 제안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제안은 단순한 민원이나 불만의 표시가 아니라 구체적인 문제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행위라고 설명한다.
좋은 제안은 문제를 제시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며, 일정과 예산을 구체화하고, 기대효과까지 설명해야 한다. 이 원칙을 구리시 공동체 정책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은 구조가 가능하다. ‘구리형 공동체 문제해결 6단계’를 제안한다.
1단계, 발견(發見)한다. 주민이 생활 속 불편과 지역문제(地域問題)를 찾는다. 2단계, 모인(會)다. 문제에 관심 있는 주민들이 작은 모임을 만든다. 3단계, 제안(提案)한다. 문제의 원인과 해결방법, 필요한 예산과 역할을 구체화한다. 4단계, 실험(實驗)한다. 처음부터 큰 사업을 추진하지 않고 작은 규모로 시범사업을 실시한다. 5단계, 평가(評價)한다. 주민 만족도와 문제 해결 정도를 객관적으로 평가한다. 6단계, 확산(擴散)한다. 성과가 확인된 사업은 다른 동네 또는 시 전체로 확산한다. 이러한 방식은 “현장을 조사하고 → 개선 아이디어를 만들고 → 평가하고 → 실시하고 → 사후 관리한다”는 제안의 6가지 규칙과도 연결된다.
셋째, 공동체에는 ‘성장 사다리’가 필요하다.
구리시는 현재 마을공동체 주민제안 공모사업을 통해 주민 주도의 공동체 활동을 지원하고 있으며, 공동체의 활동 경험과 성장 정도를 고려한 단계적 지원체계도 일반 1단계, 2단계, 3단계로 구분하여 지원하고 있다. 신규 모임은 200만원 이내, 1년 이상 활동한 공동체는 300만원 이내, 2년 이상 공동체는 500만원 이내의 활동비 지원이 가능하며, 공동체 활동공간의 시설개선은 2,000만원 이내에서 지원하는 구조다.
이러한 지원체계는 주민들의 공동체 활동을 시작하고 지속할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기반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단순히 활동 기간이나 지원금 규모에 따라 공동체를 구분하는 것을 넘어, 공동체가 실제 지역문제를 얼마나 해결했는지를 평가하고 그 성과에 따라 다음 단계의 지원과 성장을 연계하는 “구리형 공동체 성장 사다리”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공동체의 성장은 보조금을 얼마나 받았는지가 아니라 주민을 얼마나 조직하고, 지역의 문제를 얼마나 해결하며, 지원이 종료된 이후에도 얼마나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예를 들어 ① 씨앗공동체 → ② 성장공동체 → ③ 문제해결공동체 → ④ 지역혁신공동체→ ⑤ 자립공동체라는 성장체계를 만들 수 있다. 처음에는 행정의 지원을 받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사업을 기획하고 주민을 조직하며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고, 궁극적으로는 자체적인 수익 또는 후원·협력사업을 통해 일정 부분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넷째, ‘공동체+사회적경제+지역경제’를 연결해야 한다.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면서 재정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좋은 공동체라도 매년 보조금에만 의존한다면 사업의 지속성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구리시는 공동체를 사회적경제, 협동조합, 마을기업, 지역상권과 연결하는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실제로 구리시 공동체 사회적경제지원센터의 업무에는 마을공동체 사업뿐만아니라 협동조합 설립·운영 지원, 사회적경제 창업지원, 마을기업 육성, 사회적경제기업 판로지원 등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정책적 기반이다.
예를 들어 주민들이 공동으로 만든 공동체 활동이 일정 수준에 도달했다면, 공동체 → 협동조합 → 마을기업·사회적경제기업 → 지역경제 활동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컨설팅과 교육, 판로, 금융, 공간 등을 연결하는 것이다. 공동체가 단순히 “좋은 일을 하는 모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경제적 지속가능성까지 확보하는 조직으로 성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다섯째, ‘공동체 공간’을 도시의 생활 SOC로 바라봐야 한다.
공동체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사람이 만날 공간이 필요하다. 사람은 온라인에서 연결될 수 있지만, 공동체의 신뢰는 결국 일정 부분 얼굴을 마주하는 생활공간에서 형성된다. 따라서 구리시는 공공청사, 유휴공간, 주민센터, 공공시설, 빈 점포 등 활용 가능한 공간을 조사해 주민공동체가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구리형 공동체 공간은행’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공간을 새로 건립하는 것만이 방법은 아니다. 기존 공간을 주민에게 개방하고, 시간대별로 공유하고, 공동체가 관리하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행정이 공간을 제공하고 주민이 운영하며, 공동체가 프로그램을 만들고, 지역주민이 이용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하나의 공간이 단순한 시설을 넘어 주민 관계를 만들어내는 플랫폼이 된다. 행정안전부의 과거 마을공동체 정원사업에서도 주민조직이 사업 지역과 아이템을 직접 발굴·제안하고 주민의 협동 작업을 통해 공동체 공간을 활성화하는 방식을 추진한 사례가 있다.
여섯째, 공동체의 영역을 ‘돌봄’으로 확대해야 한다.
앞으로 공동체 정책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분야가 돌봄이다.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 맞벌이 가구 증가 등으로 행정이 모든 생활 문제를 직접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돌봄의 책임을 주민에게 떠넘기자는 의미는 아니다. 행정이 책임져야 할 영역과 주민이 함께 할 수 있는 영역을 구분하고, 주민의 자발적인 활동을 행정이 지원하는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다.
경기도는 이미 2025년부터 마을공동체 등이 수행하는 공동육아·보육 등 아동 돌봄 활동에 대해 ‘아동 돌봄 기회 소득’사업을 추진했고, 2026년에도 약 150개 공동체를 대상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구리시도 이를 참고하여 구리형 주민 돌봄 공동체를 검토할 수 있다.
예컨대, 공동육아, 어르신 안부 확인, 취약계층 생활지원, 세대 간 돌봄, 반찬나눔, 생활안전 활동 등 주민이 할 수 있는 영역을 발굴하고, 필요한 교육·공간·보험·활동비 등을 행정이 지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리형 공동체의 최종 목표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나는 ‘공동체가 행정을 대신하는 도시’가 아니라 ‘주민과 행정이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도시’라고 생각한다. 공동체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렇게 접근하면 주민에게 과도한 책임을 떠넘기는 결과가 될 수 있다. 행정은 행정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다만 행정이 모든 문제를 직접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주민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주민의 역량을 키우고 지원하는 방식으로 행정의 역할을 전환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민관협력(民官協力)이다.
시민제안은 주민이 정책의 수요자로서 개선 방향을 제시하고, 지방자치단체와 시민이 함께 대안을 만들어가는 민관 협력의 통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방향을 구리시의 구체적인 정책으로 구현하기 위해, 필자는 다음과 같은 ‘구리형 공동체 7대 정책’을 제안한다.
① 구리형 공동체 문제해결 공모제 : 단순 프로그램 지원보다 지역문제 해결형 공모사업을 확대한다.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어떤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를 먼저 묻는다.
② 공동체 성장사다리 제도 : 신규 공동체에서 자립형 공동체까지 성장단계를 설정하고 교육·컨설팅·공간·사업비를 단계적으로 지원한다.
③ 구리 공동체 플랫폼 구축 : 구리시의 모든 공동체를 연결하는 온라인·오프라인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누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 어떤 공간을 사용하는지, 어떤 자원을 가지고 있는지를 공유하도록 한다.
④ 공동체 공간은행 : 공공시설과 유휴공간을 조사하여 주민공동체에 개방하고, 공동체가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다.
⑤ 공동체와 지역경제의 연결 : 공동체 활동이 협동조합·마을기업·사회적경제기업·지역상권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단계별 창업과 판로를 지원한다.
⑥ 구리형 주민돌봄 공동체 : 돌봄·안전·환경·교육 등 생활문제를 주민이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주민 돌봄 모델을 만든다.
⑦ 공동체 성과평가제도 도입 : 공동체 사업의 성과를 단순히 지원금 집행률이나 행사 횟수로 평가하지 말고,주민 참여도, 문제해결 정도, 주민 만족도, 지속가능성, 다른 지역으로의 확산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공동체 정책의 성공 여부는 ‘사람의 변화(變化)’로 판단해야 한다.
공동체 사업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사업이 끝난 뒤에도 주민들이 다시 만나는가?” 보조금이 종료되었는데 활동도 함께 종료된다면 그것은 하나의 사업일 수는 있어도 지속가능한 공동체라고 말하기 어렵다.
반대로 지원이 종료된 후에도 주민들이 계속 만나고,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고, 새로운 사람을 참여시키며, 지역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한다면 그 공동체는 살아 있는 공동체다. 따라서 구리시 공동체 정책은 ‘사업(事業) 중심’에서 ‘관계(關係) 중심’으로, ‘지원(支援) 중심’에서 ‘성장(成長) 중심’으로, ‘행정(行政) 중심’에서 ‘주민(住民) 중심’으로 전환(轉換)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공동체는 ‘작게 시작해서 크게 연결’해야 한다. 공동체 활성화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거창한 구호다. 제안의 기본사고로 강조한 것도 확실한 정보에서 출발하고, 문제를 제시하며, 해결책과 일정·예산을 제시하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또한, 좋은 제안은 현재 상황과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무엇을·어떻게·언제·누가 할 것인지 구체화해야 하며, 개인·공동체·조직에 어떤 변화와 이익이 발생하는지를 보여줘야 한다.
나는 구리시 공동체 정책도 이 원칙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거대한 사업을 만들 필요는 없다. 한 골목에서 시작하고, 한 아파트에서 시작하고, 한 학교에서 시작하고, 한 상권에서 시작하면 된다. 그리고 그 작은 성공을 서로 연결하면 된다.
한 사람의 관심이 두 사람이 되고, 두 사람이 다섯 사람이 되고, 다섯 사람이 하나의 공동체가 되고, 여러 공동체가 하나의 네트워크가 되고, 그 네트워크가 결국 도시의 사회적 자본이 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구리형 공동체 활성화의 핵심이다.
공동체는 행정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주민이 만들고, 행정이 뒷받침하며, 지역사회가 함께 키워가는 것이다. 이제 구리시의 공동체 정책도 “주민에게 무엇을 지원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넘어, “주민이 스스로 무엇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시가 어떻게 도울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 바로 구리시 공동체 활성화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이다.
공동체가 살아 있는 도시, 주민이 도시의 주인이 되는 도시, 서로 돕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도시. 나는 그것이 구리시가 지향해야 할 ‘공감도시(共感都市) 구리’의 중요한 한 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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