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11시40분께 이천시 부발읍에 위치한 이천 서희테마파크에 외교의 귀재로 알려진 ‘서희의 역사적인 담판을 형상화한 동상’이 만들어져 있다.
서희는 호랑이 굴과도 같은 적진 속으로 가 적장 소손녕과 마주 앉아 담판을 지었다고 알려진다.
당시 소손녕은 "고구려의 옛 땅은 거란의 영토인데 고려가 서경 이북 고구려 땅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이를 내어놓아야 한다"고 했고, 이에 서희는 "우리 고려야말로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이기 때문에 나라 이름까지 고려라고 하였다. 만약 땅을 논한다면 너희 나라 동경까지도 우리 고려의 땅이라고 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서희의 단호한 주장에 소손녕은 말문이 막혔다고 전해진다.
태보 내사령인 서희는 고려 목종 1년(서기 998년) 7월, 57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시호(왕이나 사대부들이 죽은 뒤에 그 공덕을 찬양하여 추증하는 호)는 장위공이며 성종 묘정에 배향(공신의 신주를 종묘에 모시는 일)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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