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징역 대신 과징금’, 처벌은 줄여도 책임은 더 무거워야 한다

중앙신문 기자
[중앙신문 사설] 코로나 속 독감 유행 조짐 심상찮다. (CG=중앙신문)
[중앙신문 사설] ‘징역 대신 과징금’, 처벌은 줄여도 책임은 더 무거워야 한다. (CG=중앙신문)

정부·여당이 ‘2차 경제형벌 합리화 방안’을 발표했다. 불필요한 형사처벌을 줄이고, 경미한 행정 위반으로 전과자가 양산되는 현실을 바로잡겠다는 취지다. 331개 규정을 정비하고, 일부 징역형을 과징금으로 전환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문제의식 자체는 타당하다. 그러나 단순한 완화 여부가 우려되는 건 형벌을 덜어낸 자리에 어떤 책임을 세울 것인가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나라의 역할은 기업과 국민을 규제로 옥죄는 것이 아니라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과잉 형벌이 민생과 경제를 위축시켜 왔다는 인식에는 공감할 여지가 있다. 다만 이 발언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전제가 필요하다. 처벌을 줄이는 만큼 책임의 무게가 더 분명해져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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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벌은 국가가 행사하는 가장 강한 권력이다. 남용돼서는 안 되지만, 가벼워 보여서도 안 된다. 징역형을 줄이고 과징금으로 대체하는 발상은 행정 효율과 사회적 비용 측면에서 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다. 단순 서류 미비나 절차상 실수로 ‘전과자’가 되는 사회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도 분명하다. 그러나 징역이 사라진 자리에 들어서는 과징금이 형벌에 상응하는 억지력을 갖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합리화라는 이름으로 처벌의 실질이 약해진다면, 그것은 개혁이 아니라 신호의 약화다. 형벌을 줄였는데 위법의 유인은 그대로라면, 정책은 방향을 잃는다.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국민 인식이다. 징역은 두려움이고, 과징금은 계산이다. 개인에게는 벌금이 처벌이지만, 자본력이 큰 기업에게 과징금은 손익 계산의 일부가 될 수 있다. 과징금이 매출이나 이익에 비해 충분히 무겁지 않다면, 위법 행위는 억제 대상이 아니라 비용으로 전환된다. 정 장관은 “성실한 사업주가 한순간의 실수로 전과자가 되는 불합리를 막겠다”고 했다. 취지는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 말은 동시에 질문을 낳는다. 반복 위반이나 고의적 위법에 대해서는 어떤 선에서 더 무겁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다. 한국 사회에는 이미 ‘벌금 내고 끝나는 범죄’에 대한 집단 기억이 깊다. 이 인식을 넘지 못한다면, 전과 방지라는 명분은 곧바로 ‘돈으로 때우는 범죄’라는 프레임으로 뒤집힐 수 있다.

정책의 성패는 선언이 아니라 설계에 달려 있다. 형벌을 줄이는 만큼 책임은 더 정교해져야 한다. 중대 위반, 고의·중과실, 반복 위반, 은폐와 조작이 개입된 사안까지 과징금으로 포괄해서는 안 된다. 법인 책임만 남기고 개인 책임을 흐리는 구조 역시 경계해야 한다. 입법 과정에서 과징금 상한, 매출 연동 기준, 반복 위반 가중, 개인 책임 유지 여부가 명확히 규정되지 않는다면, 경제형벌 합리화는 합리화가 아니라 관리 실패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처벌의 목적은 보복이 아니라 예방이다. 예방 효과를 잃은 처벌은 존재 이유를 잃는다.

정 장관은 “이번 조치로 국민의 일상과 기업의 경제 활동에 활력이 더해지길 바란다”고 했다. 그 바람이 현실이 되려면 분명한 원칙이 필요하다. 징역을 줄이는 사회는, 책임을 더 정교하게 묻는 사회여야 한다. 처벌을 덜어낸 국가는 그만큼 더 엄격하고 투명하게 책임을 설계해야 한다. 이것이 이번 방안이 넘어야 할 최소한의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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