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땅에서 한국 시민이 미군의 허락 없이는 자기 집을 오갈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2025년의 대한민국, 그것도 미군 주둔 70년이 넘은 동두천에서다. 주한미군 시설사령부가 걸산동 신규 전입 주민들에게 통행증 발급을 거부했고, 이유는 “SOFA(한미주둔군지위협정)에 민간인 통행권 조항이 없다”는 한마디였다. 그 문장 하나로 시민의 생활길이 막혔고, 시와 시의회는 항의의 뜻으로 공무용 통행증 17장을 반납했다.
이 사건은 행정 절차가 아니라 주권의 문제다. 외국군의 내부 규정이 한국 국민의 삶을 제약하는 상황 자체가 비정상이다. 수십 년 동안 미군은 자체 행정지침에 따라 주민과 공무원에게 통행증을 발급해왔다. 동두천 시민들은 기지를 통과해 직장과 학교, 시장으로 향했다. 그 길은 생활의 일부였다. 그런데 어느 날 아무 예고도 없이 그 길이 사라졌다. 이유도, 대안도 없었다. 행정의 신뢰가 무너지고 시민의 일상이 흔들렸다.
SOFA는 군사적 주둔을 위한 법적 틀일 뿐, 민간인의 이동을 제한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미군은 협정의 빈틈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국민의 통행을 막았다. 협정이 아니라 ‘내부 규정’이 국민의 권리를 결정하는 현실은 불평등의 극치다. 법 위에 군이, 행정 위에 외세가 자리 잡은 셈이다.
박형덕 동두천시장은 “기지 진입로는 주민의 생명선”이라며 강하게 항의했다. 주민들은 지금 위험한 산림도로를 돌아가야 한다. 겨울이면 결빙된 도로에서 미끄러져 추락하는 사고도 있었다. 보안을 이유로 국민의 생명을 위험에 내모는 것은 주권국가의 행정이라 할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역대 정부마다 SOFA를 ‘양국 간 협정’이라며 손을 떼고,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해왔다. 하지만 국민의 기본권을 지켜야 할 책임은 어디까지나 우리 정부에 있다. 정부가 침묵하는 순간, 국민의 권리는 협정의 여백 속으로 사라진다. 이제는 변해야 한다. SOFA 합동위원회는 주민 접근권을 보장하는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 ‘생활권 보장 원칙’을 협정에 명문화하지 않는다면, 제2·제3의 동두천 사태는 반복될 것이다. 통행증 한 장이 대한민국의 주권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았다. 국민이 제 땅에서 길을 잃는다면, 그것은 동맹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존재 이유가 흔들리는 일이다. 주권은 선언이 아니라 현실이다. 지금 그 현실이 미군기지 앞에서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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