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칼럼

[공감, 세상구경] 경순왕의 결단, 지금 정치가 돌아봐야 할 거울

오기춘 기자
경순왕의 결단, 지금 정치가 돌아봐야 할 거울. 사진은 2일 연천 경순왕릉 모습. (사진=오기춘 기자)
경순왕의 결단, 지금 정치가 돌아봐야 할 거울. 사진은 2일 오후 연천 경순왕릉 모습. (사진=오기춘 기자)

며칠 전 연천군 고랑포리의 한 언덕에 묻힌 신라의 마지막 왕이었던 경순왕(敬順王, 재위 927~935년)이 있는 사적 제244호인 경순왕릉을 우연히 방문하게 됐다. 그의 본명은 김부(金傅)로 제55대 신라왕이며 효공왕의 아들이다.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은 국운이 다한 나라를 조용히 접었다. 고려 태조 왕건에게 항복을 결정한 그의 선택은 지금도 역사 속 논쟁을 부른다. 누군가는 그를 패자라 하고 있고, 또 누군가는 백성을 위한 결단을 내린 이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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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건 그가 자신의 자리를 위해 전쟁을 끌고 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천년 신라의 종말을 혼란이 아닌 평화로 마감하게 했다는 점에서 그는 패자이기 이전에 책임 있는 지도자였다고 생각 든다. 일각에서는 '현명한 결단'으로 또 다른 일각에서는 '굴욕적인 멸망'으로 평가되지만, 최소한 백성을 위한 평화적 길을 택했다는 점에서 후대에 긍정적으로 평가되곤 한다. 경순왕은 단순히 나라를 넘긴 왕이 아니라, 신라의 끝자락에서 백성의 고통을 막고자 스스로 물러난 ‘책임 있는 왕’으로 기억된다.

지금의 우리나라 정치는 과연 어떤가. 나라를 위한 정치, 국민들을 위한 정치라고 말하면서 결국은 당리당략과 진영 싸움에 몰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탄핵 정국이 반복되고 민생법안은 뒷전이다. 고금리·고물가에 허덕이는 국민의 삶은 날마다 팍팍해지는데도 정치권은 자기편 지키기에만 혈안이 돼 있다. 서로를 향해 날 선 비난을 쏟아내는 모습은 경순왕의 시대와는 정반대로 백성을 위한 정치와는 사뭇 멀어 보인다. 경순왕은 왕좌보다 백성의 생명을 우선시했다. 지금의 정치인들은 어떠한가. 의석을 지키기 위해 거짓과 왜곡을 동원하고 법과 윤리를 정치의 도구로 변질시키는 현실은 정치 혐오만 키우고 있다. 백성의 고통을 두고도 누구도 물러서지 않으려 한다. 마치 이 자리가 끝이 아니라 전부인 듯 움직인다. 말로만 하는 정치는 이제 버려져야 한다.

물론 현대의 정치는 과거와 다르다. 그러나 지도자의 품격과 책임 있는 결단, 공공을 위한 양보는 시대를 막론하고 예나지금이나 필요하다. 오늘날의 정치가 경순왕에게 배워야 할 것은 '굴복'이 아니라 용기 있는 물러섬과 백성에 대한 진심이다. 자신의 시대를 마감하는 일보다 다음 시대를 여는 일이 더 어려운 법이다. 경순왕은 그것을 해냈다. 지금 정치인들에게 묻고 싶다. 정치를 누구를 위해 하고 있는가. 자리를 위해 싸우는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가. 백성의 눈물과 피로 얼룩진 이 시국에 누군가는 “나는 왜 이 자리에 있는가”라고 되물어야 한다. 경순왕의 결단은 지금 우리에게 정치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는다. 정치하는 이들은 지금의 국민을 위해 옛 백성을 위해 내 몸을 던질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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