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품격은 무엇으로 결정될까. 인구 수나 재정규모, 교통 인프라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 땅에 뿌리내린 역사와 문화를 어떻게 기억하고 계승하느냐도 분명 한 도시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다. 108만 인구의 고양시는 분명 대도시다. 특례시라는 지위도 갖췄다. 하지만 단 하나 빠져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시립박물관이다. 이 사실은 쉽게 믿기 어렵다. 고양시는 구석기 시대 도내동 유적을 비롯해 한반도 최초의 재배 볍씨인 신석기 가와지볍씨, 고려의 공양왕릉, 조선의 벽제관 등 수많은 역사유산을 품은 도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조선왕릉과 북한산성, 행주산성까지 더하면 고양은 그 자체로 ‘박물관급 도시다.
그런데 정작 이 도시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고양에 없다. 국립춘천박물관, 경기도박물관, 대학 박물관 등으로 이관돼 뿔뿔이 흩어져 있다. 고양에서 나온 유물이지만 고양 사람은 이를 눈으로 볼 수 없는 현실이다. 이 얼마나 기이하고 안타까운 일인가. 고양시는 지금까지 6만1000여 점이 넘는 유물을 발굴해왔다. 그중 상당수는 귀속기관이 없어 떠돌다시피 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방치해선 안 된다. 단순히 공간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유물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도시의 역사와 시민의 정체성을 담는 매개다.
고양시는 박물관 건립을 위해 지난 2023년부터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조례를 개정하고 건립추진위원회를 꾸리고 시민 대상 포럼도 열었다. 임시수장고도 마련하고 비귀속 유물을 확보하며 하나둘 기증운동도 시작됐다. 현재까지 모은 유물은 1460여 건에 달한다.
문제는 박물관을 짓기 위한 가장 기초 단계인 ‘건립 타당성 용역’을 위한 예산이 번번이 좌절되고 있다는 것. 본예산과 추경 예산을 통틀어 총 7차례나 관련 예산이 확보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문화체육관광부의 공립박물관 설립 타당성 평가조차 신청하지 못한 상태다.
이 사전평가를 통과해야 건립비용의 최대 40%를 국비로 지원받을 수 있고, 경기도의 지방재정투자심사도 가능해진다. 고양시는 2019년 한차례 기본계획 수립 용역을 했지만, 이후 개발 여건과 법률이 크게 바뀌며 다시 분석이 필요한 상황에 놓여있다. 비슷한 규모의 특례시들은 이미 박물관 경쟁에 뛰어들었다. 수원시는 직영 박물관만 3곳을 운영 중이며, 성남시와 경남 창원시고 일부 개관했거나 투자심사를 통과한 상황이다. 고양만이 여전히 출발선에조차 서지 못하고 있다.
박물관 건립은 짧은 여정이 아니다. 행정안전부의 중앙투자사업 심사까지 거치면 평균 7~10년이 걸린다. 늦으면 늦을수록 고양의 유산은 더 멀어지고, 기회는 점점 줄어든다. 후대를 위해 고양을 기억하는 공간이 필요하다. 도시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고 다음 세대에게 넘겨줄 이야기들을 품을 공간 말이다. 더는 시간을 미루지 말자. 박물관은 선택이 아니라 책임이다. 각자의 입장에서 예산이 왜 통과 못했는지, 이 예산이 꼭 필요한지를 따져보면 해답은 충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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