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칼럼

천리향은 여전히 향을 뿜고

중앙신문 기자
유지순 (수필가,칼럼위원)

향이 천리를 간다하여 ‘천리향’이라고 한다. 시부모님 가신지 20여 년이 흘렀어도 천리향에 담긴 애틋한 마음이 가시지를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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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보다 따뜻한 고장인 진주에서 탐스럽게 자라던 천리향은 시아버님이 세상을 떠나시고 어머님이 우리와 함께 살기위해 서울로 올라오실 때 용설란 화분과 이삿짐에 함께 묻어 왔다. 자라던 환경이 바뀌어도 아파트 베란다가 지내기에 쾌적했는지 따뜻한 햇빛을 받으면서 어머님을 흐뭇하게 해드릴 만큼 잘 자랐다.

용설란은 해마다 화분을 갈아주어 어른 키만 해졌고, 천리향은 짙은 향을 온 집안에 뿜어내면서 식구들의 사랑을 받고 살을 찌웠다. 어머니께서 기르던 것이라 더 애지중지 했다. 십 수 년 함께 살던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아파트에서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겨울 추위에 살지 못하는 용설란은 서울보다 따뜻한 부산 시동생네로 보내졌고, 천리향은 우리와 함께 이사를 했다. 오랫동안 매일 눈 마주치며 살던 용설란은 끝까지 데리고 있지 못하고 보내면서 어머님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졌었다. 다행히 천리향은 한겨울에만 보온을 해주면 되는 식물이라 부모님 뵙듯 품에 끼고 있었다.

잘 돌보아선지 천리행도 잘 크면서 꽃이 피면 그 좋은 향을 온 집안에 뿜어내어 부모님의 향기를 맡는 듯 식구들을 흐뭇하게 해주었다.

그 후, 시골에 내려오게 되어 천리향도 함께 왔다. 추위가 오기 전까지 땅에 심어 놓으면 땅 심도 받고 좋을 것 같아 묻어 주기로 했다. 남편은 추워지면 집안으로 옮겨야 될 것을 생각하고 파기 쉽게 화분 채 묻어주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땅에서는 화분 속이지만 마음대로 뿌리를 뻗고 잘 지낼 것 같던 천리향이 생각과는 달리 시난고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누렇게 변하기 시작했다. 안 되겠다 싶어 파보니 이미 뿌리가 썩어 회생 불능 상태가 되어 오랫동안 키운 아까운 나무를 죽였다. 부모님께 죄를 지은 것 같아 안타까웠다.

이듬 해 이른 봄 매화 꽃 보려 남녘에 갔을 때 마침 근처에서 천리향을 팔기에 한 그루 사가지고 와 심었다. 정성을 들인다고 과잉보호를 한 탓인지 그도 생명을 부지하지 못하고 죽이고 말았다. 원예전문가에게 물어보니 물을 너무 자주 준 것이 화근이라고 했다.

부모님을 그리는 마음 때문인지 천리향에 향한 마음을 지우지 못해 다시 한 그루를 구해다 심었다. 이번에는 튼튼하게 키우려고 땅에 심어 여름을 났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기를 피지 못하고 잘 자리지를 않아 다시 화분에 옮겨서 아파트베란다로 계획보다 빨리 이사를 시켰다. 매일 눈만 뜨면 사랑을 주어서 그런지 차츰 정신을 차리고 잘 자라기 시작했다.

천리향 꽃향이 코끝을 스치면 형언할 수 없는 생각들이 가슴을 스치면서 부모님을 떠오르게 한다. 부모님이 우리에게 맺어준 한 그루의 나무가 이렇게 오래도록 여운을 남기면서 가슴 속에 박혀 있을 줄 누가 알았으랴.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천리향은 늘 함께 있을 것이다.

부모님을 가슴에서 떠나보내 드리지 못하듯 부모님의 추억이 스민 천리향도 그 향과 함께 우리 곁에서 떠나보낼 수 가 없을 것 같다. 한 나무를 지키면서 평생의 반려로 함께 산다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오늘도 천리향을 지켜보며 지나간 날들을 안개처럼 피워 올린다.

올해도 변함없이 천리향은 가을에 맺은 꽃봉오리를 피우려고 애를 쓰고 있으니 곧 우리에게 멋진 향을 선사할 것이다. 언제쯤 꽃이 필까 들여다보고 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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