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교육

"동두천 비밀 속 이름, '천두동'을 아시나요"..65세 주민 학생 때 겪었던 생생 증언

오기춘 기자
​​​​​​​옛 성병관리소 철거·존치 놓고 지루한 공방
최근 동두천시가 성병관리소 철거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주변에 내걸린 현수막. (사진=오기춘 기자)
최근 동두천시가 성병관리소 철거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주변에 내걸린 현수막. (사진=오기춘 기자)
최근 동두천시가 성병관리소 철거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주변에 내걸린 현수막. (사진=오기춘 기자)
최근 동두천시가 성병관리소 철거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주변에 내걸린 현수막. (사진=오기춘 기자)

최근 동두천시가 성병관리소 철거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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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동두천시에 65년을 거주했다는 시민 A씨는 “시청사를 민원 차 방문하다가 성병관리소 철거 반대 천막과 플래카드를 보고 '혹시 70년대에 ;천두동;을 아냐'며 47년 전 고교시절에 수학여행 갔던 일”을 회고했다.

그는 “시민단체가 시청사 앞에 와서 성병관리소 존치를 해야 한다며, 플래카드와 천막을 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저분들은 동두천이 어렵게 살았던 기지촌이라는 역사를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이어 “(당시) 동두천시민은 동두천에 산다는 말도 제대로 못 했던 시절”이라며 “시민들의 지워 버리고 싶은 기억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저 시민 단체의 진짜 이유가 궁금하다”며 말을 이어 갔다.

더욱이 시민 A씨는 성난 목소리로 “집창촌이었던 서울 천호동이나 복원시키자고 하지 왜 이제야 관광 발전을 추진하는 동두천시에 와서 동두천과 관련 없는 시민단체가 시 발전의 발목을 잡는 것인지? 의아하다”고 분노했다. 아울러 “70년대에 세워져 96년도에 폐쇄가 된 성병관리소 건물을 이제 와서 존치시켜야 한다고 하는 시대적인 발상도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A씨는 “당시 동두천읍 시절 이곳에는 집창촌을 비롯 그로 인해 안 좋은 기억만이 남아있었다 “며” 가장 안 좋은 기억은 '집창촌 성병 관리소라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성병관리소는 단지 성병 관련 보건의료시설일 뿐이며 우리나라 다른 지역에도 존재했었다”고 말했다. 영화 속에서도 좋은 이미지가 아닌 동두천 이미지가 자주 부각 되곤 했다고 그는 전했다.

이어 그는 경주 수학여행 때 겪은 '천두동' 이미지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학창 시절 경주 수학 여행지에서 '어디서 왔냐'며, '좌판장수 아저씨가 물어보길래 “동두천에서 왔습니다”라고 대답했는데, 자판을 깔아 물건을 팔던 아저씨가 곧바로 보따리를 걷어 그 자리를 피했다”며 당시 좌판 장수 아저씨를 이해 못 했던 일들을 얘기했다. 그런 일들이 있고 나서 그 후 학교 후배들에게 수학여행을 가면 동두천에서 왔다고 말하지 말고 “천두동에서 왔다고 해라, 창피당하지 않으려면” 그래서 “당시 그 말이 동두천에 사는 그 시대 학생들에게는 타 지역에 가면 묵시적 언어처럼 전해지곤 했다”고 말했다.

'천두동'은 동두천의 비밀 속 이름이었던 것. 그리고 서울 천호동 인근처럼 느껴지는 어감이 짖었기 때문에, '천두동요'하면 서울 어디지? 하며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있어, 웃지 못할 당시의 일들이라고 A씨는 회고했다.

70년도께 건축된 성병관리소는 소요산에 있다. 아울러 동두천 시는 소요산을 관광지로 발전시키기 위해 전력 추진하고 있으며, 폐허가 되어있는 성병관리소는 철거해야 하는 입장에 있다. 게다가 동두천시민과 소요산 상인들의 지지가 매우 크다고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동두천시가 아닌 대부분의 타 지역 시민단체가 와서 존치를 두고 철거 반대를 하고 있어, 동두천 시민 대다수는 다른 지역 시민단체가 동두천에 와서 경제 발전을 위해 추진하려는 시 계획에 차질이 생기게 하면 안 된다는 지적을 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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