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우리 집은 국수공장을 하며, 약 30여 년을 그 업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말이 공장이지 가내 공업과 다를 바가 없는 소규모의 제조업이었다. 그래도 동두천에서는 꽤나 유명한 국수 공장이었다. 70-90년대 초부터 다른 공장들에 비해 마지막까지 국수공장을 했다. 그래서 '일미국수'라는 이름값을 더 했는지도 모른다.
우리 공장에서 만드는 국수는 태양건조라 해서, 국수 기계에서 면을 빼 하루는 햇볕 잘 드는 곳에 면을 널어 5-6시간 정도 말린 후 숙성 창고로 옮겨 하룻밤을 숙성을 시키고, 다음날 햇볕에 잘 말려 완전히 건조를 시킨 뒤에 30㎝ 가량 크기로 잘라 판매하는 제조 과정을 거친다. 판매까지는 최소 이틀이라는 시간이 지나야 만 가능한 건조 과정이다.
그런데 이러한 건조 과정은 날씨가 좋아야 만 가능하다. 햇볕이 있어야 건조가 잘 되면서 면의 쫄깃함이 식감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제조 과정은 간단하지만 면에 들어갈 식염인 천일염수를 염도에 알맞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아마도 이런 것이 제조의 ‘know-how’ 일 것이다. 염도가 제대로 맞지 않으면 면이 건조 과정에서 갈라지고 잘 끊어지게 된다. 그래서 공장 처음에는 면발이 잘 서지 않기도 했다. 많은 실패를 걸쳐 지금은 작고하신 아버님은 면발이 쫄깃한 면을 만들어 나갔고, 국수 공장을 처음 차리는 이들에게 국수공장협회장이셨던 아버지는 염도는 몇 도가 적합하다고 알려 주곤 하셨다. 흔히 말하는 'know-how'를 공유하셨던 것이다.
70년 대 당시 어린 내가 생각하기에 동두천 읍에 국수 공장이 20곳 가까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이 든다. 그때는 밀가루 식품이 쌀보다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어려웠던 우리의 경제에 밀가루로 만든 저가의 국수를 많이 먹었던 시절이다. 그래서 수요가 많았고, 국수 공장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염도를 제대로 맞추지 못해 국수 면발이 약한 업체는 손님들이 찾지 않아 문을 닫기도 했다.
하물며 국수를 좋아하신다는 어느 분은 부산에서 소문을 듣고 와서 이곳 국수가 맛있다며, 국수를 사가 시는 분이 있었으니, 공장장이셨던 아버님의 국수 장인 정신은 대단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생활하는 집과 공장이 같이 붙어 있어, 항상 기계소리가 시끄럽게 들리는 가내 공업식 국수공장의 기계소리가 크기 때문에 싫었다.
기계소리가 멈추는 날은 햇볕이 없는 비가 오는 날 뿐이었다. 그래서 장마 기간이 나는 정말 좋았다. 그런데 장마기간이 어느 정도까지는 영업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던, 아버님은 장마가 길어지면 한숨이 깊어지곤 했다. 그럼에도 어린 나는 철없이 기계가 멈추어져 있는 장마 기간이 길어질수록 좋아했으니, 얼마나 어리 섞었던 것인가? 어린 마음이라지만 너무 철이 없었던 것 같다.
올해에는 유난히 장마기간이 길다. 장마가 끝나면서 습기가 가득한 폭염 날씨가 지속되며, 이어 태풍 영향권으로 비가 오고, 습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그로 인해 국민들 경기와 농사에 미치는 영향 또한 클 테니, 다시금 아버님의 한숨 깊은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2013년 방영된 드라마 '백 년의 유산'을 보면, 국수 공장에서 국수 뽑는 장면이 당시와 똑같다. 그리고 면을 널어 말리는 풍경과 국수 자르는 모습. 우연하게도 등장인물 중 한 명이 나와 같은 동명으로 나온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면 당시의 그리움이 되살아난다. 다시금 아버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되돌아온다면, 공장 안에서 그분과 마주하며, 국수 기계소리를 들으면서, 국수도 자르며, 면을 널고, 웃으며,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싶다. 많이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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