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칼럼

난(蘭)은 난이다

중앙신문 기자
이상국(수필가, 칼럼위원)

난(蘭)이 잘못 들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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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을 마감한 뒤 난이 들어올 일 없고, 보내줄 사람도 없으며, 아내 또한 돈 주고 사들일 사람이 아닌데 웬 난 일까.

‘축 발전’, ‘…을 축하합니다’란 리본이나 카드, 메시지 하나 없으니 누가 누구에게 보낸 것인지, 어느 화원에서 잘못 배달한 것인지 알 수 없어 돌려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뜻밖에 잘못 들어온 난으로 거실이 환하다. 진초록 빳빳한 잎줄기는 힘차게 솟아오르고 붉은 빛이 도는 꽃대는 튼실하게 뽑아 올려 실핏줄 무늬의 여린 꽃을 피워 올린다. 잎줄기는 기상이요, 꽃은 청순가련미이다.

공직 생활을 하면서 난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진급을 하거나 영전(榮轉)이 있을 때 의례 들어오는 것이 난이다. 자리도 나름이라 좋은 자리에 앉을 땐, 남 볼까 부끄러울 정도로 들어왔다. 난분 리본에 적힌 하객들 이름 하나 둘 읽어가다 보면 아는 사람보다 낯선 사람이 더 많다.

난을 아부나, 청탁, 눈 맞추기로 읽으니 곱게 보일 리 없다. 관혼상제엔 화환(花環)의 숫자가 주인의 격을 대신해, 화환이 많을수록 역겨워 보인 것은 부러움인지 노여움인지. 그러나 퇴직한 뒤 내 집 큰일엔 꽃 한 송이 들어 올 것 같지 않아 속상하니 나는 이토록 간사하다.

수많은 난 속에서, 그들은 나를 보고 보낸 것일까, 자리를 보고 보낸 것일까. 이 난들 앞에서 무엇을 어떻게 보답해야 할까. 내가 직무에 충실하기만 기대하며 보냈을까. 내가 축하 받아 마땅한가. 생각할수록 두려워 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런 난을 집에서까지 두고 본다는 것은 끔직한 자기 고문(拷問)이다.

크고 작은 권력의 유착을 끊자고 난 받기를 금하라는 명령이 떨어져 공무원들이 난을 되돌려 보내니 화원이 망한다고 난리를 치르기도 해 촌지(寸志)만큼 격하되기도 한다.

난 하나 책상 위에 올려놓고 환하게 웃던 동료가 있었다. 두 딸이 ‘아빠 축하해요’라는 리본이 초라해 보였고, 영전의 기쁨일랑 남모르게 집에서나 자축해야 할 일이지 하고 돌아섰지만, 지금 생각하니 순수한 눈으로 난을 읽을 줄 아는 공무원으로 보여 부럽다. 그의 난이 가장 아름다웠다.

30여 년 공직이란 긴 터널을 통과하면서 타락의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질까 노심초사하고 드러나지 않은 크고 작은 죄로 몸부림치며 생명 줄처럼 매달렸던 청렴의 끈을 놓고나니 난이 난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성삼문 충절의 오설란(傲雪蘭), 푸른 잎과 향기의 꽃을 노래한 허난설헌의 청초암향(淸楚暗香)의 난, 굴종과 치욕 속에서 집권을 꿈꾸던 대원군 이하응의 수묵난(水墨蘭)…. 그러나 난은 다른 아무 것도 아니다. 그냥 난이다.

거실의 난은 여전히 붉은 꽃대를 솟아 올리며 여린 꽃잎을 피우고 있다.

난은 자연이다. 나 또한 자연의 일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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