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칼럼

[두물머리] 추석 단상

김종대 기자
김종대(남부권 본부장)
김종대(남부권 본부장)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이 다가왔다. 추석은 그야말로 오곡백과 풍성한 수확 시기에 맞는 명절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도 풍성했다. 먹을 게 있으니 나눌 수 있는 마음도 컸다. 지금은 각자 추억으로 간직되고 있겠지만, 매년 추석이 다가오면 설레었던 당시 마음이 생각난다.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 간절하다는 사람도 있고, 다신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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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마음에 추석이 다가오기 전부터 설레었던 건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을 수 있고, 설빔이라고 하는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새 옷도 얻어 입을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형편상 설빔 대신 양말 한 켤레 얻어 싣었던 일도 부지기수였다. 설빔과 양말 한 켤레 그것도 일 년에 딱 한 번 형편이 허락했어야 했다.

또 먹을 것과 선물 한 꾸러미를 들고 오는 반가운 손님들도 기다려지는 시기였으니, 얼마나 설레었을까 말이다. 시집간 누이도, 장가간 형도, 작은 아버지도 사촌형제들도 만났다. 서울로 공부하러 간 형과 누나도 반갑게 만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언제 오나 하고 마을 어귀에 무작정 나가 눈 빠지게 기다렸던 생각도 난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마음 그윽해지고 눈가 눈시울 적셔지는 지금 세대들은 알지 못할 추억들이다. 아무리 설명해도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이렇게 만나면 헤어지기도 섭섭해 울기도 했다. 추석은 왜 그렇게 빨리 지나갔는지.

70년대 당시 서울은 모르지만 당시 시골마을엔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세배(절)를 드리곤 했다. 세배에는 웃어른들을 공경하는 마음도 있지만, 동시에 맛있는 약과와 사탕, 달달한 식혜를 얻어먹을 수 있다는 점도 먹을 게 귀했던 그 시절의 장점이었다. 술 좋아하는 어른들은 세배 후 차려 내오는 술상도 받아 마시기도 했다. 당시 우체국장으로 성공했던 동네 아저씨가 추석 때만 되면 마을 모든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고, 담배 한 갑씩 선물했었던 기억도 생생하다. 우리 마을엔 그 우체국장 아저씨 때문에 웃어른을 공경하는 사람은 크게 성공한다는 말이 돌 정도로 칭찬일색이었다.

지금은 사는 게 많이 달라졌다. 그래서 이런 모든 세시풍속 같은 게 사라진 지 오래다. 명절이라고 해도 어딜 맘대로 찾아갈 수 없다. 서로서로가 불편해하기 때문일 게다. 명절에 산소에서 만나 차례를 지내고 한 시간 이내로 헤어진다는 명절풍습을 만들어 지내는 사람들도 내 주변엔 상당수다. 연휴를 맞아 해외여행길에 떠나는 건 이제 당연한 일이다. 필자의 친구가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저희도 이번 추석엔 해외여행 한번 가시는 거 어떠냐고 여쭸다"가 혼쭐 났다고 이야기한 게 생각난다.

어떤 게 옳은 건지, 당시로 돌아갈 순 있는 건지, 이대로 가도 괜찮은 건지, 어쩐 건지 잘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이상하게 변해있는 건 틀림없다는 거다. 밤새도록 울어댄다 해도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추억이란 참 가슴이 깨질 듯 슬픔이 더 큰 것 같다. 아 내 마음속의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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