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칼럼

[조용자의 소혜(笑慧)칼럼]재롱이와 김씨

중앙신문 기자
조용자(수필가, 칼럼위원)

우리 집 개 이름은 재롱이. 하얀색 푸들로 열 살 먹은 암컷이다. 똥오줌을 가리고 오라면 오고 가라면 제 집으로 들어간다. 남편은 개를 무척 좋아해서 수없이 많은 개를 키워 온 우리 집은 개 천국이다. 그동안 기른 개 종류와 이름을 다 기억 할 수는 없지만 덩치가 아주 큰 그레이트덴과 몸무게가 120kg이 넘는 세인트버나드를 비롯해서 아주 작은 미니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개를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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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의 이름은 주로 깜순이, 고은이, 이쁜이, 알랑이, 똘순이라 불렀고, 수컷의 이름은 깡돌이, 쇠돌이, 늠늠이, 진돌이라고 지어 불렀다. 개는 남편이 좋아해서 키웠지만 개 이름은 내가 지어준다.

지금은 개성시대라 개 이름도 다양해서 별별 소리로 다 불러대지만 옛날에는 주로 워리, 메리, 해피였다.

우리 집에서 몇 집 건너 이사 온 노랑머리 여인이 어느 날 문 밖에서 “김씨! 김씨! 김씨!” 하고 동네가 시끄럽게 김씨를 부르고 있었다. 처음엔 그 집의 기사아저씨를 부르는 줄 알았다. 알고 보니 ‘김씨’는 그 집 개 이름이었다. 이유인즉 한국 사람의 성씨를 따라 김씨를 개 이름으로 지었다고 한다. 그 서양여자는 오늘도 김씨를 몰고 산책을 나간다. 김씨는 코카스파니엘 종류로 털이 노랗고 귀공자처럼 생겨서 미국식으로 젠틀! 젠틀! 하고 이름을 불러주면 좋을 뻔 했다.

서울 신림동 어느 집에 갔을 때의 일이다.

“이게 우리 집 효자의 밥그릇입니다.” 아주머니가 보여준 것은 옛날 우리 조상들이 썼던 놋주발이었다. 가장의 밥을 담아 아랫목 이불 밑에다 넣어둘 때 썼던 그런 밥그릇이다.

집주인의 아들 밥인가 했더니 자기네 집 개 이름이 효자라고 했다. 예부터 인간 못된 이를 가리켜 ‘저놈은 개만도 못한 자식이야’ 라고 하는데 자기가 키우는 진돗개는 집도 잘 지키고 주인 말도 잘 들어 효자 노릇을 한다며 자랑했다. 누가 날 보고 반가워 어쩔 줄 몰라 하며 연방 꼬리를 흔들어대겠냐고, 세상에서 자기를 제일 좋아하는 건 효자뿐이라고 했다. 효자는 수컷으로 인물이 잘 생기고 몸매도 잘 빠져서 챔피언 선발대회에 나가면 일등감이라고 한다.

요즘은 개를 가족처럼 여기고 “아이 구 내 새끼, 엄마가 밥 줄까?” 하면서 쓰다듬고 입을 쪽쪽 맞추고 철따라 새 옷을 갈아입히고 애견 센터에 가서 미용도 시킨다. 처네를 띠어 업고 전철을 탄 여자가 “내 새끼 엄마가 업어주니 좋지?” 하며 토닥거리는 걸 본 할머니가 “어휴 젊은 이 참 안 됐구려 어쩌다 개를 낳았수?” 한다는 말도 SNS에 떠다니는 말이다. 홀대받는 처량한 늙은이보다 훨씬 호강을 하며 사는 개. 목욕도 시키고, 개 미용실에 가서 이발도 하고 메니큐어도 칠해서 모양을 내고 향수도 뿌려 냄새까지 풍기고 다닌다. 요즘은 개에게 성형수술까지 한다니 개는 주인을 알아보지만 주인이 개를 몰라보면 어쩔까. 영양식에다 개 침대, 개 호텔까지 생겨 온갖 호사를 다 하고 살아도 주인이 죽으면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쪼그리고 앉아 있다가 유산까지 받는다니 참 별난 세상이다. 개가 아무리 영리하다 해도 사람 노릇은 할 수 없는데 너무 요란법석을 떨고 반려견이라며 자랑을 한다.

아무리 정성껏 개를 돌봐야 주인이 아플 때 물 한 모금 떠 넣어줄 개가 있는가. 주인을 잘 만난 개는 온갖 호강을 다 한다. 개에게 쏟는 그 정성을 사람에게 쏟아 부어 정을 주고 따뜻이 대해주면서 철따라 옷도 사다주고 먹을 것도 주며 사랑을 베푼다면 살맛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사람은 개를 키울 수 있지만 개는 사람을 키울 수 없다. 사람을 제대로 키우는 일에 관심과 애착을 더 가졌으면 좋겠다.

나는 선천적으로 개를 싫어해서 우리 집 개도 그런 나를 용케도 아는지 내가 밖에서 들어 와도 꼬리를 흔들거나 아양을 떨지 않는다. 가끔 부부싸움을 한 다음 슬그머니 집을 나간 남편은 꼭 개를 사서 안고 들어온다. 그럴 때 사온 개는 더 밉다. 키우던 진돗개 흑돌이에게 물려 다리를 다쳐 오랫동안 치료를 받은 적이 있고 부터는 개하고는 정을 붙이지 못한다.

재롱이는 이제 나이가 많아 한쪽 눈이 허옇게 변했다. 백내장인지 앞을 잘 보지 못하고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고 비틀거린다. 이웃집 김씨는 아직 건강해 보인다. 개의 나이는 장수해야 10-15년이라는데 재롱이는 몇 살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재롱이 다음으로 키울 개 이름은 멋진 미국 성을 따 부시라고 지어볼까. 견통령제도가 생길지 누가 알겠나.

새끼 때부터 키워 온 재롱이는 꼬리를 흔들고 재롱을 떨며 쫄랑댈 때가 한창 때였고 지금은 늙었다. 김씨의 주인여자에게 “How old?” 라고 물으니 김씨는 수컷이고 4살이란다. 개 나이로 한창때다. 혈통도 나이도 너무 차이가 져 개 사돈 맺기는 글렀다.

한국산 재롱이는 순 우리말 개 이름이고 김씨는 외국 혈통에 한국성을 가진 개 이름이다. 개가 새끼를 낳으면 강아지라고 한다. 사람들은 욕을 할 때 개새끼! 개새끼! 하고 욕을 하지만 유식하게 강아지! 강아지! 하고 말한다면 어울릴까. 신부님이나 조그맣게 말할 수 있겠지.

내리던 비가 그치더니 파란 하늘에 무지개가 떴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개는 무지개구나. 재롱이도 효자도 김씨도 인간구실은 절대 할 수 없는 동물 개 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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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

김기섭 2017.11.15 20:04

너무나 재미있게 잘 읽고 갑니다. 김씨..ㅎㅎ 다음 글도 기대할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