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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물머리] 사라지고 있는 목로주점의 온기

오기춘 기자
오기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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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일을 마치고 해가 질 무렵이면, 어지러운 세상사 다 접어두고 발길이 자연스레 끌리는 곳이 있었다. '목로주점' 노랫말에나 나올 법한 주황빛 알몸 전구가 골목길을 정겹게 비추는 작은 선술집. 마음 맞는 이와 마주 앉아 찌개 하나 보글보글 끓여두고 투명한 소주잔을 부딪치는 일은, 단순한 술자리가 아니라 팍팍한 삶의 숨통을 터주는 서민들의 소박한 '작은 락(樂)'이었다.

불과 작년만 해도 그랬다. 퇴근길 기분 좋게 "오늘 내가 한잔 살게"라며 호기롭게 주머니를 열던 넉넉함이 있었다. 소주 두 병에 따뜻한 안주 하나 올려놓아도 3만 원 남짓이면 족했기에, 잔을 비우는 손길에는 망설임이 없었고 나누는 대화에는 훈훈한 온기가 넘쳤다. 술잔에 담긴 것은 알코올이 아니라 서로의 노고를 위로하는 따스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선술집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발걸음은 이내 움찔해진다. 메뉴판 한쪽에 묵묵히 자리를 지키던 소주는 어느새 5천~6천 원, 도심 주요 상권으로 나가면 7천 원이라는 숫자를 달고 서 있다.

식자재비와 인건비 부담을 견디다 못한 주인이 메뉴판을 새로 써 붙일 때, 가격은 100원이나 500원 단위로 부드럽게 오르지 않는다. 안주는 단번에 2천~3천 원이 뛰고 소주는 천 원 단위로 턱턱 올라선다. 통계표의 미세한 비례가 아닌, 현장에서 곧바로 체감되는 '천 원 단위의 단절적 인상'이다.

단품 안주가 2만 원을 훌쩍 넘어가고 소주 두 병 값이 1만 원을 웃도는 가격표를 보는 순간, 절로 지갑 속 사정을 셈하게 된다. 허기를 달래려 사이드 메뉴 하나만 슬그머니 더해도 영수증에 찍히는 금액은 순식간에 5만 원을 넘어선다. 게다가 안주의 양마저 은근슬쩍 줄어드는 '스텔스 인플레이션'까지 겹치니, 잔을 몇 번 비우기도 전에 바닥이 드러나 추가 주문마저 망설여진다.

돌아보면 오래 전, 정부가 주요 생필품과 외식 품목에 행정지도 가격을 두고 물가 단속에 나서며 서민 물가의 울타리를 자처하던 시절도 있었다.

지표상의 외식 물가 상승률이 2~3%대라느니 하는 통계 수치는 골목길 선술집 테이블 위에 이르면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다. 통계학적 평균치가 아무리 정교하게 다듬어졌든, 서민이 주머니에서 실제로 꺼내 놓아야 하는 ‘현장의 영수증’은 훨씬 더 가혹하고 서글프다.

이제는 잔을 채울 때마다 지갑 사정을 걱정하게 되고, 예전처럼 "한 병 더?"라는 말이 선뜻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삶의 무게를 털어내려 찾아온 자리에서 오히려 지갑의 가벼움을 통탄해야 하는 현실. 서민의 슬픔과 기쁨을 오롯이 받아내던 '서민의 술' 소주마저 멀어져 간다.

이제는 기울이는 술잔 속에 기분좋은 취기 대신 세상살이의 씁쓸한 한탄만 차오른다. 사라져 가는 '3만 원의 온기'는 오늘 밤 목로주점의 차가운 가을 공기 속으로 아득히 멀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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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623_인천도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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