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자수첩

을지연습 현장에 나타난 ‘색깔 정치’… 민방위복 촌극 끝내야

오기춘 기자
을지연습 현장에 나타난 두 종류 민방위복을 형상화한 일러스트. /제작=Gemini
을지연습 현장에 나타난 두 종류 민방위복을 형상화한 일러스트. /제작=Gemini

지방자치단체의 재난 대응 현장이나 비상대비 회의장을 취재하다 보면 눈에 띄는 기이한 풍경이 있다. 지자체장이 소속된 정당이나 중앙정부의 정권 향배에 따라 공무원들이 착용한 민방위복(비상근무복) 색상이 제각각 갈라지는 현상이다. 지자체장이 더불어민주당 소속일 경우에는 연노란색, 국민의힘일 경우에는 청록색을 입으려는 경향이 농후하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최전선이어야 할 비상 현장에 때아닌 ‘의상 정치학’과 색깔론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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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산 절감 명목의 부칙 경과조치, 현장 혼란 부추겨

지난 2022년 하반기 정부가 추진한 민방위복 복제 개편이다. 

기존 연노란색 복장의 방수·방한 성능 부족과 낮아진 현장 식별력을 개선하기 위해 청록색(비상대비용)과 겨자색(재난현장용) 신형 복장이 도입됐다.

당시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는 지자체의 예산 부담을 줄이고 과도기적 혼란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개정 훈령 부칙의 경과조치(경과규정)를 통해 기존 노란색 복장의 ‘병행 착용’을 소진 시까지 허용했다. 그러나 순수한 예산 절감 취지와 달리 현장에서는 왜곡된 부작용이 속출한다. 지자체장의 정당 기조나 중앙정부와의 ‘코드 맞추기’ 여부에 따라 착용 복장이 갈라지는 정치적 양상이 뚜렷해진 것이다.

급기야 단체장이 바뀌면 내구연한이 멀쩡히 남아있는 민방위복을 두고 복장을 재구매해 교체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예산 낭비를 막겠다던 부칙상 경과조치가 도리어 지자체 예산 낭비와 정치적 눈치보기 경쟁을 부추긴 꼴이다.

■ 눈치보기 내몰린 공직사회, 피해는 온전히 주민 몫

더 큰 문제는 정치적 중립을 엄격히 지켜야 할 일선 공직사회의 위축이다. 

전국 약 58만 명에 달하는 일반직 공무원(행정·기술 직군 등)은 비상소집이나 재난 상황 발생 시 현장에 즉각 투입되는 기본 비상자원 인력이다.

특히 재난 현장용 겨자색 복장은 방수·방풍·방진 기능성 소재를 적용해 현장 활동성을 극대화한 특수복임에도, 정작 현장에 투입된 공무원들은 본연의 임무보다 "지급받은 옷 색상 때문에 특정 정당 기조로 오해받지 않을까"를 먼저 조바심내는 실정이다. 비상 회의를 앞두고 내부에서 어떤 옷을 입고 들어갈지 설왕설래를 이어가는 모습은 실소마저 자아낸다.

■ 재난과 안보는 정치적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비상 상황에서 행정력은 단일하고 신속하게 집중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비상근무복이 정치적 프레임으로 소비되고 공직사회의 편가르기가 조장된다면, 그로 인한 행정력 손실과 재난 대응 부실의 피해는 온전히 지역 주민에게 돌아간다.

행정안전부는 자율이라는 명분으로 현장 공직자들의 혼란을 방치할 것이 아니라, 명확하고 일원화된 복장 가이드라인 및 전환 시한을 제시해야 한다. 

복제 규정을 조속히 정비해 통일성을 회복하고, 공무원들이 소모적인 색깔 눈치 보기에서 벗어나 오직 시민의 안전과 본연의 임무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의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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