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자수첩

구리시립미술관 건립 속도 조절 논란을 지켜보며

이건구 기자
시민과의 약속, 늦출 수는 있어도 흔들려서는 안 된다
                       이건구 기자
                       이건구 기자

도시의 문화 사업은 예산에 여유가 있을 때나 벌이는 사업이 아니다. 문화 인프라 건설을 위한 지출은 도시의 미래 경쟁력을 키우는 투자다. 최근 사업 추진 시기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던 구리시립미술관 사태를 지켜 보며 떠오르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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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바뀐 후 정책의 우선 순위를 조정할 수는 있다. 그러나 시민과의 약속까지 바꿔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최근 들려오는 구리시립미술관 추진 방향의 변화는 반가운 소식이다.

구리시는 당초 단일 미술관 건립 계획에서 나아가 전시와 공연, 문화예술 활동이 함께 어우러지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기능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들이 보다 폭넓은 문화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재구성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같은 변화는 민선 9기 신동화 시장이 강조해 온 '행정의 연속성'이 반영된 결과로 읽힐 수도 있다. 기존 사업을 완전히 폐기하거나 답보시키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맞게 보완해 이어가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구리시의 고민도 이해할 만하다. 시는 당초 예산이 많이 드는 미술관 건립을 서두르기보다 갈매 지하보도 문화플랫폼 조성 등 시민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생활문화 사업을 우선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해 왔다.

미술관 건립을 위해 필요한 총사업비 297억 원 가운데 시가 부담해야 할 예산만 178억2천만 원에 이른다. 향후 공사비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여기에 현재 예정 부지인 갈매 산마루공원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문제까지 고려하면 사업 속도를 조절하려는 고민 역시 현실적인 선택일 수 있다.

앞서 구리시립미술관은 경기도의 투자심사를 통과하며 사업의 필요성과 공공성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구리시가 재정 부담을 이유로 추진 시기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승인까지 받아 놓고 왜 미루느냐"는 시민들의 비판과 "지금은 더 시급한 민생 현안이 있다"는 시의 입장이 맞서며 거센 논란이 불거졌다.

두 주장 모두 일리는 있다.

지금 구리시를 비롯한 지방정부의 재정 여건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복지와 교통, 도시기반시설 등 시민들의 삶과 직결된 사업에 투입될 예산도 빠듯하다. 문화 사업 역시 중요하지만, 당장 필요한 민생 사업을 먼저 챙기겠다는 행정의 고민 또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점이 있다. 사업의 우선 순위를 조정하는 것과 정책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사실이다.

재정 여건에 따라 사업 시기를 늦출 수는 있다. 하지만 시민과의 약속까지 흔들린다는 인상을 줘서는 안 된다. 속도는 조절할 수 있어도 큰 방향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시민들이 원하는 것도 사업의 존폐를 둘러싼 논쟁이 아니다. 왜 지금은 늦추는지, 언제 다시 추진할 것인지, 그동안 어떤 준비를 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필요하다. 행정은 그 과정과 로드맵을 시민들에게 투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행정의 연속성이란 전임 시장의 정책을 무조건 계승하는 데 있지 않다. 시민에게 필요한 정책이라면 시대와 재정 여건에 맞게 보완하고 발전시키는 데 있다.

민선 9기가 내세운 '시민 중심 행정'도 결국 그 연장선 위에 있다. 민선 8기의 시정 구호였던 '즐거운 변화, 더 행복한 구리시'를 이어가는 '동화와 같은 새로운 변화' 역시 시민과의 약속 위에서 완성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구리시립미술관 건립 사업이 행정의 연속성을 보여주는 첫 사례가 되기를 기대한다. 시민과의 약속을 늦출 수는 있어도, 흔들려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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