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포커스 기획

[기획] ‘선언·만세·기억의 현장’ 107주년 삼일절...수도권서 만나는 ‘1919의 마음’

김종대 기자
​​​​​​​서울선 ‘선언의 문장’ 경기선 ‘확산의 몸짓’ 인천은 ‘항구도시의 첫 만세’를 품고 있어 사진보다 안내문 한 줄을 끝까지 읽고 와야 ‘평범한 사람들’의 결단이었다는 3.1운동
양평군 양근리 물안개공원 고산정 옆에 세워진 우리나라 태극기가 세찬 봄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4월28일 오후 모습. (사진=중앙신문DB)
양평군 양근리 물안개공원 고산정 옆에 세워진 우리나라 태극기가 세찬 봄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4월28일 오후 모습. (사진=중앙신문DB)

[[중앙신문=김종대 기자] 3·1절은 107년 전인 1919년 3월1일, 우리 민족이 일제강점기 속에서 독립을 선언하고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을 벌인 날을 기념하는 국경일이다. 그날은 단순한 시위의 날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은 독립된 나라이며, 그 주인은 국민”이라는 선언이 우리나라 곳곳에 울려 퍼진 날이었다. 무기가 아닌 선언문과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는 점에서, 3·1운동은 비폭력 대중운동의 상징으로도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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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올해 3·1절은 107주년. 이 날의 의미를 찾는 방문은 ‘관광’이 아니라 ‘태도’에 가깝다. 빠르게 걷기보다, 멈춰 서서 읽고, 한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날의 선택을 오늘의 질문으로 바꿔 들고 오는 일이다. 수도권지역인 서울·경기도·인천에서 3·1절과 직접 연결되는 현충·기념 시설과 역사 현장 10곳을 선별했다.

서울 종로 | 탑골공원

탑골공원은 3·1운동 당일 시민·학생들이 모였던 대표적 공간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당초 독립선언식이 이곳에서 거행될 계획이었으나, 전날 민족대표들이 장소를 태화관으로 변경했다는 점까지 함께 알고 가면 ‘현장’이 더 또렷해진다. 여기서의 관람 포인트는 “사진 찍는 팔각정”이 아니라, ‘왜 사람들은 약속된 무대가 바뀌었는데도 해산하지 않았나’다. 공원 안 안내문과 기념 요소를 끝까지 읽어보면, 그날의 긴장과 혼란이 오히려 생생해진다.

서울 종로 | 3·1독립선언광장(옛 태화관 터)

3·1운동 당일 민족대표들이 독립선언식을 거행한 곳이 태화관이고, 현재는 태화관 터(태화빌딩) 일대가 ‘3·1독립선언광장’으로 조성돼 있다. 여기는 “큰 유적”이라기보다 표지석과 이름이 남은 자리다. 그래서 더 좋다. 흔적이 작을수록, 상상은 정확해져야 한다. 표지석 문구를 읽고, “선언은 왜 ‘조용한 실내’에서 시작됐나”를 떠올려보자. 거리의 만세와 실내의 선언은 서로 다른 방식의 용기였다.

서울 종로 | 승동교회

승동교회는 당시 학생 대표들이 3·1운동의 지침과 계획을 모의한 장소로 소개되고 있다. 탑골공원과 근거리였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곳에서는 건물 자체보다 ‘준비의 기술’을 들여다보는 마음이 필요하다. 선언문이 ‘어디서’ 낭독됐는지만 외우면 역사와 멀어진다. 누가 모였고, 어떻게 의논했고, 무엇을 결심했는지가 3·1절의 실제 동력이다.

3.1운동 재현 모습. (사진제공=서대문형무소 역사관)
3.1운동 재현 모습. (사진제공=서대문형무소역사관)

서울 서대문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서대문형무소는 3·1운동 이후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된 상징적 공간이다. 특히 3·1운동으로 수감된 이들이 있었던 감방과 옥중 투쟁 관련 전시가 알려져 있다.

여기서의 관람 포인트는 “감옥이 무섭다”가 아니다. 연령과 직업들의 기록을 보면 20대가 많고, 직업도 농부·학생·종교인 등 다양했다. 즉 3·1운동은 ‘특별한 사람들’의 사건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결단이었다. 제107주년 3.1절을 맞아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기념행사 ‘서대문, 1919 그 날의 함성’을 개최하고, 애국지사와 순국선열이 추구한 자유와 평화의 가치를 시민들과 공유하는 행사 및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행사는 3월1일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입장은 오후 5시30분에 마감된다. 장소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및 독립공원으로,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행사 당일에는 하루 무료입장이 운영된다. 다만 관람객 안전을 위해 지붕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인 보안과청사 건물(상설전시실 지하 1층 및 1·2층)은 임시 폐쇄된다.

이날 전시해설과 단체관람, ‘우리가족역사탐험대’ 프로그램은 운영하지 않는다. 행사 일정과 내용은 변경될 수 있다.

서울 중구 | 3·1독립운동기념탑(남산공원, 장충동 일대)

남산공원에는 3·1독립운동의 정신 계승을 취지로 세운 3·1독립운동기념탑이 있다. 탑 높이를 1919년과 연결해 상징화했다.

이곳에서는 ‘기념물’의 정답을 찾기보다, 기념탑 아래에서 한 번만 질문을 바꿔보자. “그들이 독립을 원했던 이유”를 오늘식으로 바꾸면, 결국 “내 삶의 주인은 누구인가”로 돌아온다. 기념은 과거의 문장을 현재의 언어로 번역하는 일이다.

화성시 만세길의 시작점에 있는 만세길 방문자센터 전경. (사진=중앙신문DB)
화성시 만세길의 시작점에 있는 만세길 방문자센터 전경. (사진=중앙신문DB)
화성시 만세길의 시작점에 ‘2019 아이코닉 어워드’ 건축분야 대상을 수상한 만세길 방문자센터가 있다. (사진=중앙신문DB)
화성시 만세길의 시작점에 있는 만세길 방문자센터 전경. (사진=중앙신문DB)

경기도 화성 |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제암리)

제암리는 3·1운동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의 현장으로 국가유산(사적)로 지정돼 있다.

여기서는 마음가짐이 분명해야 한다. 즐겁게 ‘다녀왔다’고 말하기 어려운 곳이다. 대신 희생자 이름과 사건 경과를 천천히 읽고, 한 줄이라도 마음에 남기고 오는 방문이 맞다. “만세”가 얼마나 큰 대가를 치렀는지, 이곳은 가장 정직하게 보여준다.

1919년 3.1운동의 만세 소리가 화성에 닿았다. 장안면 수촌리에서 시작된 만세 행렬은 우정면 화수리를 거쳐 31km를 돌며 면사무소를 불태우고 주재소를 파괴했다.

총을 쏘는 일본 순사에 맞서며 격렬히 저항한 화성의 3.1운동이었다. 이후 일제의 잔인한 보복을 겪었지만, 화성의 용기와 독립 의지를 보여준 위대한 발걸음이었다.

이런 역사를 간직한 화성시는 7년 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독립정신을 기리는 ‘3.1운동 만세길’을 조성했다.

100년 전 그때, 우리 선조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걸었던 바로 그 길 31km 구간이다. 만세길의 시작점에 ‘2019 아이코닉 어워드’ 건축분야 대상을 수상한 만세길 방문자센터가 있다.

안성3.1운동기념관 전경. (사진=중앙신문DB)
안성3.1운동기념관 전경. (사진=중앙신문DB)

경기도 안성 | 안성3·1운동기념관(만세고개 일대)

안성3·1운동기념관은 안성 지역의 3·1운동을 기리고 관련 자료를 전시하는 공간이다. 안성은 ‘서울의 선언’이 ‘지역의 행동’으로 바뀌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 강점이 있다. 전시장에서는 지역 시위 전개, 참여자 기록, 기념 시설(만세고개 기념비 등)을 통해 ‘확산의 논리’를 읽을 수 있다. 포인트는 하나다. “누가 소식을 옮겼고, 누가 결단했나” 지역의 역사는 늘 ‘연결’로 만들어진다.

안성 3.1운동기념관. (사진=중앙신문DB)

경기도 수원 | 팔달산 3·1독립운동기념탑

수원 팔달산에는 3·1독립운동기념탑이 있다. 이곳은 ‘기념’이면서 동시에 ‘전망’의 자리다. 탑 앞에서 도심을 내려다보면, 1919년의 만세가 ‘특정 거리’가 아니라 생활권 전체를 흔들었다는 감각이 온다. 아이들과 간다면 “만세는 어디서 시작돼 어디까지 번졌을까”를 지도처럼 이야기하기 좋다.

인천 동구 | 3·1독립만세운동 인천지역발상지기념비(창영초등학교 내)

인천 지역에서 3·1만세운동이 처음 일어난 곳으로 인천공립보통학교(현 창영초등학교)가 거론되며, 학교 안에 ‘인천지역발상지기념비’가 현충시설이다.

이곳을 볼 때는 ‘학교 안에 비석 하나’로 끝내지 말자. 오히려 학교라는 공간이 주는 메시지가 크다. 만세는 군사시설이 아니라 일상의 공간에서 출발했다. 아이들과 가면 ‘왜 학교가 먼저 움직였을까’라는 한마디만 던져도 대화가 달라진다.

인천 강화 | 강화 3·1독립운동 기념비(용흥궁공원 내)

강화에는 ‘강화 3·1독립운동 기념비’가 용흥궁공원 내에 건립돼 있으며, 강화 지역 만세운동의 전개 과정과 참여자, 체포·재판 등 기록이 함께 소개된다.

강화의 관람 포인트는 ‘섬의 역사’가 아니다. “멀리 떨어진 곳도 동시에 움직였다”는 사실이다. 3·1운동은 중심에서 주변으로만 번진 것이 아니라, 각 지역이 각자의 방식으로 ‘같은 날의 결심’을 만들어냈다. 그 동시성이 바로 3·1절의 힘이다. 3.1절은 지금 “내 삶의 주인은 누구인가”를 외치는 현대인들이 꼭 가봐야 할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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